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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Dec 15. 2024

자존심보다 더 소중한 것

지옥에서 천국으로 4

(이전 화와 연계되는 이야기)


이날을 지금 돌이켜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회피형 남자와 회피형 여자의 전형적인 싸움, 그리고 파국.


우리는 ‘회피형 불안정 애착유형’의 사람들인데,

회피형은 기본적으로 자신은 긍정적으로, 타인은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남혐’, ‘여혐’같이 특정 대상을 혐오하는 사상에 영향을 받을 확률이 높다.


우리 부부 또한 마찬가지였고,

나는 남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남편은 여자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서로에게는 어느 정도 신뢰가 쌓여

각자가 혐오하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우리는 정서 기반에 단단하지 않은 불안정 애착유형이기에

상대방이 조금만 잘못해도 그 근본의 믿음이 무너져버리곤 한다.


‘역시 내 말이 맞았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또, 나는 정서적인 유대감을 무시(회피)하는 경향이 있어서

듣는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며 말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종종 배려 없는, 직설적인 말투가 자주 튀어나오곤 한다.


“내가 하루종일 애 봤으니까 이제 오빠가 좀 봐.”


나의 공격적인 이 말투는 남편을 비난하는 것처럼 들리기에 충분했다.


나의 피곤과 짜증이 섞인, 감정을 정제하지 못하고 한 발언으로 인해

남편은 감정이 상했고, 내 말의 의도도 왜곡되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남편은 내 말을 듣고 반발심이 생겼다.

‘그럼 나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가정을 위해 힘쓰는 자신의 노력을, 그저 당연한 일이라고 치부하는 것인가?’


남편은, 내가 이제껏 자신의 노동을 무가치하게 여겼다는 것에 깊이 분노했고,

부당하다고 여겼으며, 내 정신머리를 확실히 개선해야겠다고 여겼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이런 행동은 신혼 때 하는 ‘초장 기싸움’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남편은 반발심리로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내가 벌어다 주는 돈이다.”

“그 돈으로 네가 입고 쓰고 하는 거다”


평소 내가 알던 남편 성격으로는 절대 하지 않는 말들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육성으로 저런 말들을 들으니

나 또한 그동안의 신뢰가 다 무너졌다.


부부로서 서로 협력하는 관계가 아닌

내가 일방적으로 부양당하는, 짐짝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내가 집에서 육아를 전담하는 건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그동안 내 계획과 가치에 대해 나눴던 시간이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깊이 실망했고,

서로에게 화가 났다.


이 일로 인한 갈등은 극에 달해

결국, 이혼의 목전까지 갔던 것이다.



나는 이 일로 인해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의 감정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일의 원인은 나의 말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확실히 말투에 문제가 있다.

갈등을 일으키는 말투는 반드시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말투를 바꾼다는 것은,

내가 살아온 과거, 가정환경, 나의 습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바꾸는 일이다.


그렇기에 말투를 바꾸기는 쉽지가 않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혹여, 이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를 만나더라도

내 말투를 바꾸지 않는다면

그로 인해 누군가를 상처 입힐 것이 분명했다.


나는 말투를 바꾸기로 했다.

자꾸만 삐져나오는 내 자존심을 죽이고, 내 인생을 바꿔보기로 했다.


내 말투를 바꾸기 위해 나의 습관을 돌이켜보고,

내 습관이 형성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내 원가족의 문제를 들쑤시며 애착 관계도 바로잡으려 애썼다.


그것은 나름으로 성과도 있었다.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하지만 마음속 깊숙이,

내가 나의 본성을 해치고 있다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나를 억누를수록, 나에 대한 죄책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하지만 바뀐 내가 좋고, 또 그게 옳다는 것을 알기에

억울하지만 참고, 막막하지만 인내하며

‘나를 버리는 것만이 옳은 길이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지내왔다.


나는 자존심도 버렸다. 행복한 나의 미래를 위해서.

그런데 자꾸 억울하다. 반발심이 생긴다.

그게 너무 괴롭다. 정말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자존심이라는 게 대체 무엇이기에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

모두가 행복하면 됐지, 내 자존심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자존심은 자신을 높이 세우는 마음이다.

자존심이 상할 때는, 주로 자신의 가치나 존엄이 무시당하거나,

손상된다고 느낄 때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바꾸고자 하는 건 말투뿐인데,

왜 자존심이 상할까?


이상했다.

말투는 자신이 살아온 배경과 환경에서 비롯되는 습관일 뿐인데

그것을 자체를 내 자존심이라고 여긴다는 게.

습관은 필요에 따라서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영역인데,

왜 나는 내 과거의 습관을 내 자존심과 연결 짓고 있었던 걸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며

자존심을 세우고 있었음.


내가 자존심을 세우는 행동,

즉 내 과거를 정당화하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내 태도가,

상대방과 화합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자존심과 내 행동습관을 분리하기로 했다.


나는 내 자존심, 내 자아를 버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상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관습을 버리는 것이었다.


나를 버리는 것은 슬프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옛 관습을 버리는 것은 그리 슬픈 일이 아니다.


옛 관습으로 인해 내가 상대방과 화합하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얼마든지 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썩어져 가는 옛 관습을 버리는 것.


그건 나를 버리는 것도 아니고,

내 자존심을 버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나의 어그러졌던 과거를 바로 잡는 것뿐이며

나의 행복을 앞당기는 용감한 일이다.


버리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

그것은 내가 상대방과 더 잘 화합하며,

진정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이었다.


행복의 열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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