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천국으로 7
“당신이 그랬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최수종이 ‘부부’를 19글자로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
저 19글자 말 한마디에
부부간의 존중과 사랑, 신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저 말이 내 가슴에 사무친다.
나도 남편에게 저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내 옆에 있는 이 남자는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나는 남편에게 최수종 씨의 발언을 남편에게 들려줘 보았다.
“오빠는 저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남편은 그 말을 듣고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저 말은 완전히 열반에 이른 사람의 말인데?”
나는 남편의 말이
내가 전혀 현실성 없는 말을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고,
남편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말이라며 선을 긋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남편에게 꼭 저 말을 듣고 싶었는데,
남편이 회피형이라 내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만약 남편이 자신이 회피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하지만 직접적으로 “너 회피형이야!”라고 말하면
분명히 싸움이 날 것 같아서 살짝 떠보기로 했다.
나는 남편에게 내가 남편을 회피형 특성을 참고해
작성한 글을 읽어줘 보았다.
내 남편은 독립성을 추구하는 회피형이라서, 상대방이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한다.
남편은 역시나 반색하며 말했다.
“말도 안 돼. 그냥 내 성격일 뿐인데, 너무 회피형인 것처럼 끼워 맞추는 거 아니야?”
예상했던 일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다른 방식으로 물었다.
“그럼 부부 사이에는 서로 부정적인 감정도 나눠야 한다는 건 어떻게 생각해?”
남편은 “부정적인 감정을 상대방에게 표출하는 건 부부간을 떠나서 사람 간의 예의가 아니야. 네가 화를 내면 내가 부당하고 생각해도 그 화를 다 받아줘야 한다는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서운한 마음이 들어
“부부간에 화 좀 받아 줄 수도 있는 거 아니야?”라고 했다.
남편은 그런 행동은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더더욱 하면 안 되는 행동이라고 더욱 강조해서 말했다.
자신이 부당한 상황이라면 절대 나를 품어주지 않겠다고 말하는 남편.
남편의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실수라도 한다면 언제든지 남편에게 내쳐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이런 사람과 평생을 산다면 내 앞으로의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당신이 그랬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다.” 따위의 말은 평생 들어보지 못하겠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날은 큰 싸움은 하진 않고, 약간 기분 상한 상태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그날 이후로 내 마음속에 남은 물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왜 우리는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하지 못할까?‘
나는 우리의 대화를 다시 되짚어보다가,
내가 남편이 계속 싫다고 주장했던,
대답을 정해놓고 강요하는 듯한 대화를
시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화도 안 내고 최대한 좋게
남편에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좋은 어조로 말한다고 해서
그게 좋은 대화는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을 꼭 들어보고 싶었는데,
이런 대답은 절대 강요해서는 안 됐던 걸까?
진짜 부부 사이에는 하면 안 되는 말일까?
좋은 대화를 하는 것은 참 어렵다.
나는 방법을 도무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며칠 후, 정신과 상담이 있는 날
나는 의사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좋은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먼저 남편의 감정을 상하게 했던 것 같다고,
하지만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비폭력 대화(NVC)‘라는 대화법을 알려주었다.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는 상대방과 나 자신을 존중하며 갈등을 해결하거나 소통하기 위한 대화법이다.
상대를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내 감정과 욕구를 솔직히 표현한 뒤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나는 내가 애타게 찾았던,
나에게 꼭 필요한 대화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비폭력대화법으로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 왔던 남편과의 의사소통 문제를
아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나는 비폭력대화법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았다.
1. 관찰하기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평가를 배제한다.
2. 감정 표현하기
내가 느낀 감정을 솔직히 표현한다.
3. 욕구 찾기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한다.
4. 부탁하기
구체적이고 긍정적으로 요청한다.
나는 비폭력 대화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았다.
내가 말하는 방식은 비폭력대화법과 완전히 반대되는 대화법이었다.
내가 미리 판단하여 이미 답을 내리고,
내 감정은 숨기며,
내 마음에 맞는 대답만을 기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번 <최수종 어록 강요사건>에서
나는 남편이 회피형이라는 사실에만 매몰되어,
남편이 이런 말을 당연히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미리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처음에 내 감정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은 채 상대방의 의견만을 물어보는 방식으로 질문을 했다.
나는 ’남편에게 저 말을 듣고 싶다‘라는 내 욕구를 전혀 표현하지 않았고,
모든 상황을 뭉뚱그려 ’저 말이 맞으니 인정하라‘는 식으로 결론을 지었다.
내 말이 남편에게 얼마나 폭력적이었을까?
나는 내 방식으로만 대화하면서
그걸 맞춰주지 못한 남편을 원망하며
더 큰 갈등을 만들었던 거다.
앞선 사건에 비폭력 대화를 적용하면 이렇다.
1. 상황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남편은 부정적인 감정을 나누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2. 상황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알아차리기
나는 남편이 나를 받아주지 않고, 언제든지 버릴 수 있을 것 같아 불안하다.
3. 진짜 욕구 찾기
남편에게 신뢰와 사랑을 받고 싶다.
4. 부탁하기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 마치 내가 실수를 하면 오빠가 나를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프고 불안해. 내가 혹시나 오빠를 힘들게 하는 실수를 하더라도, 나를 좀만 더 믿어주고 기다려주면 안 될까? 나는 오빠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만약 내가 비폭력 대화의 방식으로 말을 했다면
우리 부부의 관계는 더욱 발전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말을 다르게 하면 결과 자체도 달라진다.
즉, 대화의 기술에 따라 관계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 좋은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난보다 공감을 우선으로 하고,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하는 좋은 대화일 수 있다.
좋은 대화는 연습에서 나온다.
꾸준한 연습을 통해 대화의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면
언젠가는 분명히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일상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갈등 상황에서
비폭력대화법을 사용하는 예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