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래를 쓸어버린다
가까이 있고 싶은데
터지고 싶은 몸을 안으로 모아서
모래여인은 스스로 형체를 만들었다
해변가 어느 가정집에 가서
여인은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있다
“앞으로 내 학업에 신경 쓰지 마,
갑자기 왜 신경 쓰는 거야?
그리고 나 학원 빠지는 거 말 맞춰죠!”
고등학생 딸이 엄마에게 대들며 말했다
“그건 안돼! 너 또 거짓말하고 안 가려고 하는 거지?
하기 싫은 공부는 뭣하려 해! 당장 학원 그만둬!”
엄마는 홧김에 마음에 없는 말을 쏟아부었다
“엄마가 협박하면 내가 오늘 학원에 갈 줄 알아?
나한텐 거짓말하고 엄마는 거짓말하지 말라지?
용돈 안 준다고 하는 말, 안 하기로 했잖아!
먼저 말부터 맞춰. 나 학교에서 현장학습으로
늦어서 못 가는 거야!”
딸은 엄마 말에 굽히지 않았다
모래여인은 엄마의 입에서
화를 돋우는 뱀의 세치 혀를 보았다
엄마가 망설이자, 뱀은 신경을 조여 고통을 줬다
하지만 딸의 말을 듣게 하기는 쉽지 않았다
모래여인은 엄마의 머릿속에 들어가
약해진 뱀을 쫓아냈다
‘딸의 혀도 뱀처럼 갈라져 있군.
몰라서 그렇지!’
딸을 바라보던 모래여인이
엄마의 입이 돼서 말했다
“거짓말은 안 해, 나보고 거짓말하라는 거잖아!”
“왜 이제 와서 선한 척이지? 나한테는 잘만하면서.
내 기분은 안중에도 없지?
학업에 신경 안 쓴다면서,
신경 쓸 거면 제대로 쓰던가?”
딸은 몰아붙였다
“그래, 그동안 신경 못 써서 미안하다.
하지만 엄마한테 거짓말하라고 시키는 건 아니야.”
“이번만 해줘, 제발!”
“솔직하게 선생님께 말할 거야.”
엄마 입으로 모래 여인의 모래 말이 술술 나왔다
“엄마와 싸워서 늦어 못 간다고? 그건 아니라고 봐!”
“네가 나에게 시킬 일이 아니야.”
“제발 융통성 있어 봐, 감정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이미 선생님께 늦어서 못 간다고 문자 보냈어.”
“거짓말은 융통성이 아니야!”
모래 말이 엄마 입에서 힘 있게 쏟아졌다
“거짓말쟁이가 되기는 싫어! 부끄러워!”
딸의 머릿속에 있던 뱀이 말 문이 막히며 당황해했다
“늦어도 다녀와.”
딸이 부끄러운 기색을 감추려 하자,
뱀의 날카로운 혀가 길어졌다
“그냥 말 맞추라면 말 맞춰!”
“거짓말하는 게 부끄러운 거야!”
뱀은 다시 한번 말 문이 막혔다
“학원 갈 테니까, 말 맞춰!”
뱀이 말하기 전에 딸의 의지가 먼저 나왔다
“넌 가고, 학원에는 늦게 간다고 할게.”
“알았어, 엄마.”
뱀은 할 말을 잃고 우왕좌왕했다
모래여인은 이때를 놓칠세라
뱀의 입 속으로 모래를 가득 넣어 쫓아냈다
모래여인은 엄마처럼 딸의 몸속으로 들어가
거짓말했던 기억을 모래로 가득 채웠다
모래여인이 바람같이 사라지고
모녀의 그림자에 숨어있던 뱀이 나타났다
머리로 기어올라가
고장 난 거짓말 대신 이기심을 부추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