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사가 준 유리병에
효과를 본 엄마는, 잘 때를 빼곤
허리춤에 병을 묶고 다녔다.
설거지하고 소파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려는 찰나
아들이 엄마를 불렀다.
“엄마, 내 민소매 어딨어?”
“겨울이라 안 입을 것 같아
창고에 넣어놨는데.”
“지금 입고 나갈 거야, 찾아!”
엄마는 여러 개의 옷상자를 열어
검정 민소매를 찾았다.
“자, 여깄어!”
“회색은?”
엄마는 옷상자에서 옷들을
꺼냈다 넣기를 세 번 반복했지만
회색 민소매를 찾을 수 없었다.
겨울이라 창고는 춥고,
엄마의 마음속은 까맣게 탔다.
“안 보이는데, 다른 옷 입으면 안 돼?”
“엄만 자기밖에 몰라!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옷을 정리해?
학원에서 히터 틀어서 얼마나 더운데,
이 바지엔 회색 민소매를 입어야 한다고!”
‘검은 민소매 입고 가면 되잖아!
자기밖에 모르는 건 내가 아니라 너야!
자기가 안 하니까 옷을 정리했구먼!
네 방 옷 털끝도 안 건드릴 테니, 앞으론 네가 해!’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꼭 다문 엄마는
병뚜껑을 열었다.
‘그만 찾으라면 좋은데…. 휴―’
유리병 안에 검은 모래가 차올랐다.
나가기 바쁘다면서도 아들은
찾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창고에 옷이 없자,
엄마는 아들 서랍을 꼼꼼히 살폈고
셋째 서랍에서 바로 찾아냈다.
"여기 있네! 잘 찾아보지.
자, 입고 가.”
엄마는 아들에게 회색 민소매를 내밀었다.
“괜찮아, 나 검은색 입었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현관문을 열고
아들이 나갔다.
'쾅'
엄마는 진작 얘기하지 않은
아들의 뒤통수에 대고
서운했던 말을 따다닥 하려고 했다가
두둑이 채워진 병을 다시 열었다.
검은 모래가 넘칠 듯 꽉 차올랐다.
모래가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게
엄마는 병뚜껑을 닫았다.
모래의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생각이 병에 담기고,
참는 이유가
마음에 남을 거예요.”
“추운 창고에서 쪼그리고 앉아
옷을 찾고 있는 내 마음을
아들이 알아줄 리 없지.
아들이 해본 적이 없으니까….
내가 찾아주는 게 맞고.
자식도 부모가 돼 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잖아!
나도 아들의 마음을 몰랐어.
겨울에 민소매가 필요한 줄 생각도 못 했네.
아들은 내가 알 거로 생각했으니,
날 믿는 마음도 있지.
챙기는 건 내가 잘하니까 불평하지 말고,
아들은 심부름시키면 곧잘 하니까, 부탁하면 되지.
내가 바라는 게 많았던 거야!”
삼켜지듯 푸른빛에 녹아
모래는 연기처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