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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금나비 Dec 01. 2024

모래의사의 쓴맛 없애기 2

“생각이 병에 담기고,

참는 이유가

마음에 남을 거예요.”     


화병으로 모래의사를 찾아가

유리병을 가져온 아내는

남편처럼 화가 날 때마다 꾹 참고

병뚜껑을 열었다.

검은 모래가 차면 파란 펜으로

병 위에 찬 높이만큼 표시했다.

모래는 차다가 줄어들다,

물 같이 말랑해 보였다.     


아내는 자녀들의 화도

날려버리는 병을 갖다주고 싶어서

모래의사를 찾아갔다.    

 

웬 성난 여인이 병을 들고

의사에게 따지고 있었다.

“이런 돌팔이 의사!

시키는 대로 했는데

화도 안 줄고.

봐, 모래도 안 쌓였잖아!”


아내는 참견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여인한테 가서 병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주머니, 이 병을 보세요!

검은 모래가 쌓였죠?”  

   

“일부러 넣어 왔겠지.

당신, 의사와 한패 아니야?”     


아내는 화내지 않고 병뚜껑을 열었다.

검은 모래가 조금 더 차올랐다.

“에구머니나, 이럴 수가!

당신이 마술사야?”

여인이 놀라 자빠지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는 모래의사가

말하신 대로 했을 뿐이에요.

아줌마가 화를 내실 때 참았어요.

그리곤 병뚜껑을 열었죠.

모래가 차네요, 보이시죠?"   


여인은 눈을 끔뻑이다 볼을 꼬집었다.

아내의 말이 의심스러웠지만 참고

여인도 유리병을 열었다.

검은 모래가 조금 차오른 걸 보고

여인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 그럼, 마음에 남은 건 뭐야?"

    

"제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참아서,

제 진심을 이렇게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는 게 남았어요."    

 

유리병에 쌓인 모래가

사르르 녹아 파랗게 변하더니

공기 중으로 증발해 버렸다.  

    

모래의사가 여인에게 물었다.

"마음에 남는 게 있나요?"

    

"잘 알지 못하고 화냈던

내 의심증을 찾았어요."

여인의 병에 담긴 모래도

휙― 연기처럼 휘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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