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병에 담기고,
참는 이유가
마음에 남을 거예요.”
화병으로 모래의사를 찾아가
유리병을 가져온 아내는
남편처럼 화가 날 때마다 꾹 참고
병뚜껑을 열었다.
검은 모래가 차면 파란 펜으로
병 위에 찬 높이만큼 표시했다.
모래는 차다가 줄어들다,
물 같이 말랑해 보였다.
아내는 자녀들의 화도
날려버리는 병을 갖다주고 싶어서
모래의사를 찾아갔다.
웬 성난 여인이 병을 들고
의사에게 따지고 있었다.
“이런 돌팔이 의사!
시키는 대로 했는데
화도 안 줄고.
봐, 모래도 안 쌓였잖아!”
아내는 참견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여인한테 가서 병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주머니, 이 병을 보세요!
검은 모래가 쌓였죠?”
“일부러 넣어 왔겠지.
당신, 의사와 한패 아니야?”
아내는 화내지 않고 병뚜껑을 열었다.
검은 모래가 조금 더 차올랐다.
“에구머니나, 이럴 수가!
당신이 마술사야?”
여인이 놀라 자빠지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는 모래의사가
말하신 대로 했을 뿐이에요.
아줌마가 화를 내실 때 참았어요.
그리곤 병뚜껑을 열었죠.
모래가 차네요, 보이시죠?"
여인은 눈을 끔뻑이다 볼을 꼬집었다.
아내의 말이 의심스러웠지만 참고
여인도 유리병을 열었다.
검은 모래가 조금 차오른 걸 보고
여인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 그럼, 마음에 남은 건 뭐야?"
"제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참아서,
제 진심을 이렇게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는 게 남았어요."
유리병에 쌓인 모래가
사르르 녹아 파랗게 변하더니
공기 중으로 증발해 버렸다.
모래의사가 여인에게 물었다.
"마음에 남는 게 있나요?"
"잘 알지 못하고 화냈던
내 의심증을 찾았어요."
여인의 병에 담긴 모래도
휙― 연기처럼 휘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