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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커피에 아들 생각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오는 길에 무인카페에 들러 레몬커피를 산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길을 걷고 있는 터라 '욱' 하고 뱉을 뻔했지만 참았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이라면 다시는 안 먹어야 하는데, 난 호기심이 발동했다.

베란다에 키우는 애플민트에 레몬을 넣어 허브 청을 만들어 볼까 하고, 나는 어제 레몬 한 봉지를 온라인으로 시켰는데 오늘 새벽에 도착한 그 싱싱한 레몬이 내 머리를 간지럽혔다.


나는 설탕 안 든 커피 가루에 따뜻한 물 200ml를 넣고 그 위에 레몬을 얹었다.

‘헐, 왜 안 뜨고 가라앉는 거야!’

‘옳지!’

나는 레몬을 슬라이스 해서 한 개를 반으로 나눴다. 한 개를 커피 안으로 ‘퐁당’ 빠뜨렸는데, 다행히 노란 껍질 부분이 커피 수면으로 떴다. 그 위에 나머지 반 개의 레몬 조각을 올리니 감쪽같다.

나는 레몬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무인카페에서 먹은 레몬커피는 레모나 가루보다 더 단 설탕 가루가 목구멍을 타고 ‘후루룩’ 넘어가면서 아찔했는데, 달면서도 겨우 넘긴 설탕 덩어리 레몬커피의 기억을 무색하게 만든 이 커피는 먹을 만하다.

레몬과 설탕과 커피가 따로따로 느껴지는 조화 없는 맛에서 집에서 만들어 먹는 맛은 조화가 담겼다.

커피의 쓴맛을 감싸주는 레몬 향의 맛이 느껴진다.

‘이런 맛으로 레몬커피를 마시는구나!’

아메리카노 한 잔 먹는데 향이 더해져 심심하고 적적한 마음을 한 숟가락씩 녹여주는 맛이라고 할까?

나쁘지 않다.


요즘 아들이 내 속을 모르고 적당히 넘어가려는 태도에 속이 많이 탔는데, 레몬커피가 상큼하게 한 숟갈씩 걷어내는 것 같다. 재수 중인 아들은 내 커피 물에 잿가루를 팍팍 넣고 나는 레몬을 넣어 희석하고 있다.

말 못 할 일이지만, 자식을 키우며 속이 많이 타는 것 같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아직도 사춘기 성장통을 길게 앓고 있는 것 같다. 나를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고 아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듯도 하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애가 앉아서 공부만 해야 하는 게 얼마나 답답했을까를 생각하면서 아들이 힘든 지금 막막한 현실의 터널을 헤치고 나와 빛을 찾는 그날까지 하늘을 보며 기도하게 된다.


커피에 레몬이 들어가 선지 짠맛이 살짝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설탕이나 시럽을 안 넣은 것이 신의 한 수!

커피가 같이 눈물 뚝뚝 흘려주는 것 같고, 레몬 향으로 상쾌하게 털어내라고 달래주기도 한다.

마음을 달래주는 레몬커피가 어느 커피보다 보약 같고 상념을 털어주는 귀한 아침.

하루에 한두 잔 먹는 커피를 보리차 먹듯 계속 달고 먹을 수 있을 만큼 거리낌 없는 이 맛!


레몬커피에 아들 생각 한 스푼, 상념들을 날려주는 한 스푼 한 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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