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밥상을 차리고 티브이를 보려고 리모컨을 찾았다. 다행히 내 눈의 레이다에 잡혔다. 안심된다.
나는 남편과 20년 가까이 살면서 이 리모컨 때문에도 갈등이 생긴 적이 많았다. 남편의 피로 회복제는 리모컨이었다. 소파에 누워 리모컨으로 세상을 둘러보는 일. 리모컨은 남편을 울고 웃게 하는 카타르시스의 장치였다.
그 귀한 리모컨을 나는 쉽게 생각했었다. 아이들이 보다가 소파 밑에 떨어지거나, 숙제를 안 할까 봐 내가 침대 속에 숨겨 놓고서 못 찾을 때도 있었다. 왜 남편이 올 시간만 되면 리모컨이 사라지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남편이 도깨비처럼 들어와 리모컨이 사라진 걸 느낀 순간, 남편의 눈에서 빛이 튕겨 나왔다. 리모컨을 찾을 때 나오는 화난 빛이었다. 나는 리모컨을 찾을 때까지 한 시간, 두 시간이고 찾아야 했다.
‘꼭 오늘 티브이를 봐야 해? 내일 또 보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재촉하는 남편 성화에 식은땀을 흘리며 두세 시간 만에 리모컨을 찾는다. 찾은 리모컨을 남편 손에 쥐어주면 남편은 언제 화가 났었냐는 듯 순한 양이 됐다.
요즘엔 티브이와 인터넷을 연결해 주는 셋톱박스에 리모컨 찾는 기능이 있다. 나와 같이 리모컨을 찾지 못해서 진땀 흘리는 부부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리모컨이 사실은 남편에게 가장 귀한 것 중에 하나라는 걸 알게 됐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런 일은 부부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 친정에 가면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가 약을 가지고 아빠에게 서운해하는 모습을 봤다. 약을 한 곳에 두시지 여러 곳에 둬서 제시간에 못 먹는다는 얘기였다. 어떤 날은 찾지 못한 약은 빼고 드셨다는 얘기도 하셨다.
엄마는 급한 성격인데 누워서 아빠가 해주시는 걸 목이 빠지게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아프지 않았을 때는 남편에게 잘 부탁하지 않고 스스로 하시던 분이었는데….
나는 부모님뿐 아니라 조부모, 그 위에 많은 조상들도 리모컨은 아니지만 어떤 물건 가지고 부부가 많이 다투셨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내가 남편의 마음을 너무 몰라준 거다!’
나에게는 별로 필요치 않은 물건이지만 남편에게는 힘든 일을 하고 돌아와 쉴 수 있는 휴식처를 만들어 주는 동아줄이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약은 삶을 연장해 주는 끈이듯. 조상들도 복장이 터지는 걸 해결하고 싶었는데 못하고 돌아가신 건 아닌지. 나에게 찾아와서 해결해 주길 바라고 있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셋톱박스에 리모컨 기능이 있어 다행이고 그 기능이 없어도 이젠 리모컨을 잃어버리지 않는 나에게도 감사다. 무엇보다 남편에게 무지 감사하다. 리모컨의 소중함을 가르쳐준 사람이니 말이다.
나는 삶의 고비를 넘기면서 이제는 갈등이 있으면 심각하게 생각하기보다,
‘또 뭔가 해결해야 할 게 있나?’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루하루가 내게 주어진 미션이라고, 사는 게 미션!
남편과 리모컨을 두고 신경전 벌였던 많은 날이 몇 초 컷밖에 안 되는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