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호수 둘레길을 산책한 지 한 달 여가 넘었다.
차로 한 시간 전후면 삼천포, 남해 바다에 갈 수 있고 지리산을 찾을 수도 있지만 주말마다 갈 수는 없었다. 인근에 낮은 산들도 휴일과 주말마다 찾기엔 쉽지 않았다. 늘 누군가와 약속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낮은 산들은 간혹 홀로 올랐지만 뭔가 불편했다. 입산 초입이나 중간에 홀로 온 여성들을 만나면 반갑기도 했는데 그들은 쌩하니 달아나 버렸다. 숲 사이 무덤이라도 보면 뒤통수가 찌릿했다. 그러다 홀로 산행은 멈추고 누군가와 연락을 취하는 불편도 자존심을 이기지 못하여 같이하던 산행도 멈췄다.
차로 10분여 거리에 있는 호수 공원을 우연히 홀로 갔다. 수십 년을 오갔는데 생각해 보니 혼자 찾은 것이 처음이었다. 누군가와 같이 가야 하는 곳으로 여겼으니 웃음이 났다. 놀라운 발견은 또 있었다. 호수 둘레를 걷는 내내 모든 것이 온전히 내 것인 것이다. 시간도 풍광도.
누군가와 말하느라 그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 듯싶었다. 사물이 새로웠다. 그때도 반짝였을 테고 그때도 푸르렀을 햇살과 나무들이 새 것 같았다. 내 맘대로 걸어도 내 맘대로 쉬어도 모두가 내 맘이었다. 아이고 이제야 나는 어른이 된 건가.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나무를 보고 호수를 보면서 여러 생각들을 풀어놓았다. 최근에 가장 많이 들여다보는 브런치스토리에 대한 여러 상념들이 쏟아졌다. 홀로 생각하기에 이만큼 좋은 곳이 또 있을까 감동하며 걸었다. 삶은 매 순간이 이렇게 깨달음이고 성장인가 보다. 모든 것이 나를 보고 있는 듯했다.
오늘 아침은 긴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그사이 계절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알맹이를 다 내준 밤송이는 빈 껍질이 더 짙어져 이젠 흙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난밤에 두어 조각 먹은 빵이 부숭부숭 눈가를 부풀려 놓았고 걸음이 어제만큼 가볍지 않았지만 홀로 찾은 호수는 이뻤다. 수면이 훤히 잘 보이는 벤치에 여느 때처럼 백발의 여성 한분이 앉아 있었다.
여름 꽃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색이 변해가는 잎사귀가 더 수북해진 길을 걸으며 혼자 생각했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이 길을 걸으며 브런치스토리를 생각해 왔다. 팔을 힘차게 젓고 올리고 내리고 갖가지 체조를 해보는 만큼 브런치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문득 브런치스토리가 변죽 많은 애인 같다 싶었다.
지난가을 처음 '브런치스토리' 작가 승인을 받았을 때는 꼭 애인에게 선택된 기분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흠모의 대상이던 누군가에게 선택받은 느낌이랄까. 그 '브런치스토리'는 자기에게 걸맞은 이가 되려면 달라져야 한다는 동기부여도 했다. 마치 애인처럼. 그러면 이쁘고 편한 공간에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기쁨을 누려야 하는데 어느 틈엔가부터 구독자 수에 눈이 갔다. 다른 이들의 글은 내 글 미모에 자신감을 잃게도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크리에이터 선정 리본을 달아주면서 브런치스토리는 간택을 했다. 더 이쁜 애인을 점하듯.
애인의 변심에 땅을 쳤다. '브런치'에 '스토리'를 붙일 때 아 좋다 했고 '응원하기'를 도입한다고 할 때 아 멋지다 했다. 그럼 '크리에이터' 선정도 아 필요하겠다 했으니 쿨해야 하는데 마음이 아픈 건 왜인가.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그냥 즐기면 되고 즐기는 자가 남을 테고 그 장을 펼쳐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신나는 일이다. 애인이 꼭 나를 알아줘야만 애인이 아니듯 나 혼자 애인 할 적에 그게 짝사랑이라고도 하지 않은가.
혼자는 산에도 못 가고 혼자는 호수 길도 못 가고 혼자는 집도 잘 떠나보지 못했지만 혼자 브런치 작가 신청도 해봤고 작가 선정도 되어봤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주말이면 혼자 나와 앉아 있어 봤으니 눈물겨운 공부 맛도 안다. 혼자 읽고 쓰는 걸 좋아한다. 봐주는 이 없는 이야기가 많지만 꼭 누가 봐주지 않아도 내 글이니까 좋다.
브런치스토리를 그냥 짝사랑만 할지라도 일 년 전에 먼저 선택을 해준 건 지니까.
그래도 미운 애인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