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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소금과 고춧가루 그리고 사랑

4/ 역할도 

by 사과꽃 Feb 24. 2025


겨울이 끝날 무렵에 나오는 배추가 있다. 아직 추운 날씨에 바닥에 쫙 붙어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자랐다. 손바닥처럼 납작해서 제 속을 다 보여주는 꽃 같은 배추, 이름하여 봄동이다.


냉장고에 일주일을 두어도 멀쩡한 놈을 꺼내 씻는다. 커다란 냄비에 육수 코인을 한알 넣고 황태 몇 가닥과 표고가루를 풀어 물을 끓인다. 씻기도 쉬운 봄동을 댓 번 헹궈 소쿠리에 건져둔다. 냄비가 끓으면 봄동 큰 잎을 넝쿨넝쿨 썰고 대파, 양파, 땡고추를 썰어 넣는다. 가운데가 부풀어 올라 향긋함이 냄비를 휘감을 때 된장을 풀고 다진 마늘을 넣으면 끝이다. 봄동 된장국이다.


큰 볼에 기본적인 양념재료를 차례대로 넣는다. 다진 마늘, 고춧가루, 깨소금, 설탕, 매실액, 식초, 맑은 멸치액젓. 눈치챘을까? 여기서 맛을 만드는 건 다진 마늘과 매실액, 멸치액젓이다. 설탕을 넉넉히 넣고 매실액을 생략할 수도 있고 까나리액젓이나 국간장으로 간을 대신해도 되지만 우리 집은 맑은 멸치액을 쓴다. 그래서 집집마다 맛이 다르리라. 섞은 양념에 봄동을 먹기 좋게 잘라 넣고 버무린다. 대파나 양파 당근을 채 썰어 곁들이면 보기도 좋고 영양가도 올라간다. 봄동 겉절이다.




한국음식은 가짓수가 많고 복잡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몇 가지 재료가 핵심이다. 만국의 기본 재료라는 소금이 국간장, 진간장, 다양한 액젓으로 변환되었다. 우리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인데 참기름은 깨소금이 들어가니 기호에 따라 선택 가능하다. 화룡점정으로 다진 마늘과 매운 고추를 꼽는다. 매운 고추도 기호에 따라 활용한다. 세계인이 좋아하는 맛으로 단맛이 빠졌다. 설탕이다. 설탕을 물엿이나 매실액, 복숭아 배 생강진액으로 다양하게 만들어 활용한다. '시장이 반찬이다'는 말은 결국 이런 기초 양념이 얼마나 재료를 다양하게 만나는가에 따른 말이다.  


모든 일이 들여다보고 파악하면 쉬운 법이듯 '반찬 만들기'도 관심이 답이다. 관심을 기울이면 잘하게 된다. 미식가 백종원이 대한민국에 기여한 게 있다면 모든 남성들 특히 5~60대 남자들에게 음식을 만들어보고 싶게 했다.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게 마음을 움직였고 쉽게 설명했다. 어머니도 가르치지 못한 일이었다.


며칠간 출장을 가며 남은 가족을 위하여 서너 가지 국에 카레 잡채까지 해놓고 나온 분이 있었다. 놓고 온 물건을 가지러 들렀더니 벌써 아들 둘과 남편이 라면을 끓이고 있더라 했다. 날짜까지 붙여 두고 온 찬을 손도 대지 않았더라고 분통을 터트리는 이도 있었다. 부인도 가르쳐주지 못하는데 백종원 씨는 훌륭한 국민 교사가 되었다. 남편들이 역량을 발휘하도록 기회를 뺏지 말아야 한다.




집밥 이점 중의 하나는 신선한 재료 선택과 내 마음껏 재료를 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취향껏 양념할 수 있고 시간도 돈도 남는다. 요즘은 한우 대게도 신선하게 식탁까지 온다. 한 번쯤 회상하고 그리워할 '집밥'을 엄마들만 만들지 말라. 우리 음식은 알고 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 쉬운 만큼 신선한 재료 선택이 준비의 절반이다. 가족이 손잡고 틈날 때마다 재료를 사러 가자.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들여야 모두가 좋아하는 집밥이 탄생한다.


많은 일이 그렇겠지만 우리 음식도 알고 보니 쉬웠다. 가족이 맛있게 먹어줘서 성공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인 양념이 다섯 손가락 안이다. 다른 분야처럼 음식 만들기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결국 몇 가지 양념을 이리저리 배합해서 버무리는 것이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듬뿍 넣어서 버무리면 그 맛은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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