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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나페 Oct 17. 2022

그렇게 나는 백혈병이 되었다

'오늘 점심은 덮밥이야'와 같은 맥락

나는 <그것>이 되어 버렸다


 4시간이 지나려면 아직은 한참이나 남은 오후 2시쯤 코로나 검사 결과도 음성이고 병실로 이동할 수 있다고 연락을 받았다 짐이랄 게 내 옷 밖에 없었던 우리는 챙길 것도 없이 침대 채로 바로 동했다 응급실에서도 누워서 이동해봤지만 층과 층이 다르고 엘리베이터도 이용하고 하여튼 긴 거리를 누워서 이동하는 게 민망하고 어색했다 옮긴 일반병실의 내 자리는 창가였다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만족했다 한 층과 병실 안, 내 또래는 없었다 나는 그저 <일반> 병실인 줄 알았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환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항생제 알레르기 때문에 아직은 모든 검사가 완벽히 진행된 건 아니라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내가 달고 있는 주삿바늘은 없었다 골수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없이 있을 수가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걸 제외하고는 요 근래에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두통도 이명도 없었고 심장 조여 옴도 숨쉬기도 다 좋았다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도 없었다 회진시간. 드디어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나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듣고 싶었고 <그것>에 대해 착오였고 알레르기 때문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아직은 지혈이 덜되서 누워서 경청할 준비를 했다.


 '보호자만 따라오세요'


 미처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커튼 사이로 사라져 버리셨다 지혈 때문에 누워만 있던 나는 떠나가는 교수님을 붙잡지 못했고 남편은 부랴부랴 따라 나갔다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환잔데? 나한테 얘길 해야지 보호자만 데리고 가다니 무슨 얘길 하나 싶었다 휙 사라저버린 교수님을 따라 나갔던 남편은 생각보다 금방 돌아왔다 무슨 얘길 했냐 닦달했고 남편은 내게 말했다 골수검사 결과가 좋지 못하다고 머리털이 쭈뻣 서는 거 같았다 하지만 <그거>라고 얘기 안 했잖아 가판독일뿐이고 남편과 애써 <그거>라고 입에 담지 않고 둘이서 말없이 휴대폰을 들었다 '아닐'가능성에 매달려 검색만 했다


 다음 날이 되었다 이번에도 교수님은 남편만 호출한 채 휙 가버리셨다 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붙잡지 못했다 너무 순식간에 가버리셔서 혼자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언제 오나 기다리다 화장실이 급해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면담실에서 나오는 남편과 만났다 남편과 함께 병실로 이동하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무슨 얘기 했냐고 물어봤다 '너 백혈병이래' 서로 그간 말은 안 해도 암묵적으로 금기시했던 <그것>의 단어 <백혈병>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응, 오늘 점심은 녹두전이야'와 같은 맥락으로 말해서 장난치는 줄 알았다 뭐 그런 거로 장난치나 싶어서 장난치지 말랬더니 '진짜'란다 면담실과 병실 사이의 짧은 거리만큼 우리의 대화도 짧게 끝났는데 남편은 내 자리에서 그만 울고 말았다 나는 '옆집에 개가 똥을 싼대'와 같은 기분이었다 현실감각이 없었다



 울이 아니여도 괜찮아


 남편은 내게 서울로 가자고 했다 나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서울의 한 병원이 백혈병으로 유명하다는 걸. 꼭 그 병원이 아니더라도 백혈병 환자들은 서울로 많이 전원을 하고 그런다는 걸 알지만 곧 현실에 부딧쳤다 나만 생각하고 나만 치료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서울로 가는 게 맞지만 나에겐 아직 많이 어린 <두 아이>가 있다 그리고 지방에서 서울까지 자차로 약 4시간 30분이 걸린다 퇴원 후 외래를 왕복 9시간에 병원 진료까지 플러스다 전국의 환자들까지 다 몰리니 언제 입원할지도 모르고 비행기? 기차? 돈을 떠나서 내가 그 거리를 체력적으로 버틸지가 의문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응급실로 가야 했는데 다른 병원의 환자를 응급실에서 받아줄지도 의문이었고.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그냥 집이랑 제일 가까운 여기 이 병원에 계속 있겠다고 아이들도 볼 수 있고 퇴원하고 안 좋으면 바로 올 수 있지 않겠냐고 그리고 서울로 가면 대기도 길고 검사도 다 다시 해야 하는데 싫다 어차피 백혈병 치료는 매뉴얼이 되어있어서 어딜 가나 같은데 일단은 여기에 계속 다니자고 했다 어제 나름 열심히 인터넷에 검색해본 결과였다 둘 다 아니라 하지만 검색은 엄청나게 해 보았다 아니라고 되뇌어도 어렴풋이 둘 다 느끼고 있었나 보다 백혈병이 맞다고. 


 약간의 희망도 있었다 검색 결과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던 옛날의 백혈병이 아니라는 것 충분히 완치가 가능해졌다는 점이었다 약 10년의 세월동안(어쩌면 그보다 더) 엄청난 의학적 발달이 있었고 더 이상 변기 붙잡고 토하고 죽는 그런 병이 아니었다 이것도 착오가 있는데 심하게 토하고 그런 건 질병 때문이 아니라  항암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더 이상 불치의 병이 아니라는 거다 아직 매우 위험한 질병이지만 완치되어 일반인처럼 사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고 아직 젊으니까 충분히 살 수 있을 거라고 긍정적이게 생각하며 내일은 꼭 뭐가됬든 교수님을 붙잡고 얘기를 나눠야지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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