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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형 말투에 대한 성찰

K-장녀인데 교사면 그렇게 되더라고요

by 이육공

오늘의 글은 철저하게 존대로 적으려 합니다. 제게 은근히 깔려 있는 명령형 말투가 거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종종 고압적으로 말하곤 하더라고요. 간혹 스스로 아차! 싶긴 한데, 제가 아차! 하지 않는 무의식의 순간에도 그럴 걸 생각하면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라고 날 때부터 명령형 말투를 사용한 건 아닐 거예요. '응애, 어머니와 의료진 분들 고생하셨습니다. 눈이 부시니 불을 꺼주시겠어요?'하고 근엄하게 말하는 신생아가 세상 어디에 있겠어요. 언제부터 이렇게 강경한 사람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쩐지 한 n년 전쯤부터 엄마가 '너는 제법 건방져 보이니까 항상 말을 조심하렴' 하시던데, 왜 그때는 몰랐을까요?


다행스럽게도 아직 인간관계에서 트러블이 일어난 적은 없습니다. 제 친구들이 배려심이 많은 편인가 봐요. 아니면 끼리끼리 어울리는 걸까요? 제 친구들도 상당수가 명령형의 말투를 사용해요. 아무래도 장녀들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일반화를 하면 안 되는 거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청소년기에는 트러블이 좀 있던 것 같아요. 저 사회화가 많이 늦었거든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사회성과 유머를 통해 건방진 말투를 희석시켰는데 이제는 말투 자체를 고치려 슬슬 노력해야겠습니다. 지금이야 키 작고 당돌하고 앙큼한 젊은이의 매력으로 포장할 수 있지만, 10년, 20년, 30년 뒤에도 명령형으로 말하고 있으면 어떡해요.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저는 유연하고 관용적인 어른이 되고 싶어요. 중장년 이상의 나이인 제가 젊은 친구들에게 명령형으로 말하면 그들은 매우 불쾌할 거예요. 어휴 지금부터 고쳐야지.


이래도 으응~ 저래도 으응~ 했다는 황희 정승처럼 부드럽고 유하게 말해보려고 했더니, 세상에나 그냥 초등교사 말투가 되었습니다. 중고등학생을 대할 때에 비해서야 동글동글 예쁜 말투가 되었지만, 말의 내용은 여전히 좀 명령형이에요. 이를테면 '우리 친구~ 이걸 한 번 해볼까요? (얼른 해라.)' 이런 느낌이죠. 으음 그래도 '야덜아~~!!!!! 잡담 그만!' 하는 것 보다야 나아진 걸까요? 정말 이 일을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시켜먹는 말투가 너무 체화되었어요.


역시 침묵이 금이라는 옛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니네요. 아예 말을 전보다 줄이면 될지도 몰라요. 말을 하기 전에 마음속으로 대본을 짜는 작전인 거죠. 하지만 저는 물에 빠져도 물고기랑 얘기하느라 안 나올 사람이에요. 침묵은 정말 쉽지 않아요. 특히 낯가리는 상황에서는 어색한 정적을 참지 못하고 아무 말이나 해버리죠. 초면인 동생 친구에게 꼬부기 성대모사를 보여줬던 기억은 정말 지우고 싶은 기억 중 하나입니다.


여하튼, 이렇게 또 노력해야 할 일만 넘쳐납니다. 삶은 끝없는 노력의 과정인가 봐요. 대충대충 살고 싶은데, 성찰하는 인간은 대충 살기도 글렀나 봅니다. 아니, 노력을 대충 하면 될까요? 아직까지 인간관계가 나쁘지 않은 걸 보면 천천히 대충 노력해도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개성과 문제점을 가르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타인을 불쾌하게 하면 문제점이고, 타인이 매력적이라 하면 개성인가요? 모든 판단은 그럼 내가 아닌 남이 하는 건가요? 그런데 누군가는 매력이라 하고 누군가는 불쾌해하면요? 하물며 내가 신이 된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수는 없잖아요. 그때에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다수결로 해결하나요?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잖아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혼자서 돗자리 깔고 소풍놀이를 하고 있으니 그걸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옆에 한 명씩 앉아주는 것, 이게 삶일지도 모르죠.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만 소중히 여기기도 벅차요. 스스로의 삶을 건사하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요. 제 곁의 소중한 사람들이 상처받는다면 열과 성을 다해 고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러니까 알려주시겠어요? 만일 제가 여러분에게 상처를 준다면, 명령형 말투뿐 아니라 무엇이든 바꾸려 노력할게요. 만일 바꿀 수 없는 본질적인 문제라면 그때엔 여러분의 상처를 달래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아무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삶은 허상이에요. 그건 그냥 단절이니까요. 그러나 모두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어 하는 삶을 꿈꿔요. 그건 확실히 다정하려 노력하는 삶이니까요. 세상이 다정했으면 좋겠어요. 때로는 상처 입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돌보는 그런 곳이라면 마음 놓고 한껏 사랑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러니까 오늘도, 아무것도 죽지 않고 아무것도 죽이지 않는 세상보다 모두가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세상을 꿈꿔 보겠습니다. 참, 명령형 말투는 천천히 고쳐볼게요. 결말이 조금 생뚱맞지만, 항상 그랬듯, 따스한 나날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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