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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아야지만 어른이 된다..?

응애

by 이육공

교무실에서 아이를 낳아야지만 어른이 되는 거라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영원히 애기라는 말이 오갔다. 진짜 정말 너무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나는 합법적으로 술을 구매할 수 있는 응애인가? 비혼주의자이자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인 나는 고민에 빠졌다. 저 말이 사실이라 가정할 때,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없다면 나는 내적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다. 분명 4살쯤부터 애늙은이 소리를 들으며 자랐는데, 막상 성인이 되어 애기 취급을 받으니 기분이 묘하다. 일본의 장수 할머니가 말하길, 본인의 비결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갖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그럼 이분에겐 생물학적 노화만 일어났을 뿐 그의 본질은 아가였기에 장수하신 것인가.


얼마 전엔 은사님께 '교만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어린 나이에 인생을 통달한 것처럼 말하는 게 재미있으셨나 보다. 딱 이때쯤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우울, 나이가 들면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 좀 더 고차원적인 고통(?)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아이를 낳지 않으면 영원히 교만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의 글은 전부 교만으로 물들어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부끄럽다. 나의 교만함과 어리석음이 지속적으로 타인에게 노출되었다. 어이쿠.


'이 나이에 응애라고 해봐야 김흥국 성대모사로 보일 텐데....'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오고 간다. 여전히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는 성숙한 편이라고 여겼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은 거다. 나는 일종의 선민의식처럼 모두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종종 이게 문제임을 인지한다. 내가 잘나 봐야 얼마나 잘났다고 모두를 책임지려 하지? 왜 나는 그들이 나보다 어리며 내가 보호해야 할 존재라고 여기지? 그래봐야 다 똑같은 애새끼인데 말이다. 늘 말로만 '사람의 경험은 모두 다르고, 완벽한 이해는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 나름의 고(苦)를 지고 살아가니까 함부로 사람을 재단하면 안 된다'라고 말할 뿐, 나의 태도는 지극히 명령적이고 고압적이며 선민적이다. 애니어그램 8번 유형이라 그런가?(농담이다.) 어쩌면 k-장녀로서 살아온 날이 너무 길었을 수도 있다.


어쩐지 내가 쓰는 모든 글이 성찰처럼 느껴진다. 너무 교만해서 성찰 말고는 쓸 수 있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 참, 내게도 첫 조카가 생긴다. 친한 친구가 처음으로 아이를 가졌다. 태명은 푸른이. 소식을 듣자마자 내가 대체 뭐라고 너무 벅차올랐다. '내 친구한테는 뭘 해줘야 하나, 지금 당장 친구한테 필요한 게 뭘까? 산후에는 어떤 선물을 주지? 아이보다 산모가 더 중요한데 내 친구는 뭘 갖고 싶을까? 그나저나 내년에 태어날 푸른이에겐 어떤 이모가 되어줘야 하나, 정말 정말 많은 애정을 주고 싶다. 내 친구가 낳은 첫 아이니 얼마나 예쁠까. 기왕이면 딸이었으면 좋겠다. 내 친구를 닮은 딸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을 텐데. 하지만 아들이어도 괜찮아. 내 친구가 힘들게 낳은 아이인데 당연히 예쁘겠지.' 하는 말들이 마구마구 떠올랐다.


푸른아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할 철딱서니 없는 이모와 오래오래 놀자. 나는 영원히 아이니까 네가 서른이 될 때까진 너와 비슷하게 놀 수 있을 거야. 벌써 이렇게 주접을 떠는 이모는 별로니? 그럼 푸른이가 이해해 주는 걸로. 이모는 아직도 애기거든. 푸른이가 몸만 늙어가는 애기 이모를 사랑해줬으면 해. 나중에 푸른이가 어른이 되면 이 글을 보여줄게. 쑥스럽지만 이모는 벌써부터 너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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