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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공 Aug 25. 2023

재능 없는 나를 견디는 일

  대체적으로 많은 분야에서 평균 이상의 재능을 보이지만, 몇몇 분야는 극악무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더럽게 재능이 없다. 제일 못하는 건 춤이다. 어느 정도냐면 초중고를 넘어 대학교까지 모든 장기자랑에서 열외되었다. 심지어 '신입생은 장기자랑에 무조건 참여하는 게 전통'이라던 선배조차 나의 춤을 보고 맨 뒤로 가서 최대한 안 보이게 추든지 빠지라고 말했다. 그다음으로 못하는 건 볼링. 벌써 한 네다섯번은 쳐봤는데 최고 점수가 41점이다. 딱딱한 공과 상성이 안 맞는 걸까 싶은데, 포켓볼은 칠 줄 아는 걸 보면 또 그건 아니다. 수영도 정말 못하는데, 물에 뜨지도 못한다. 종종 생존 수영을 배워야 할지 고민한다.


  춤, 볼링, 수영은 전혀 관심 분야가 아니다 보니까 여태껏 깊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요즘 또 하나의 재능 없음으로 인해 절망을 느끼는 중이다. 의기소침 그 자체! 자 이제 밝혀본다. 나는 기타 연주에 재능이 없다. 예전에 통기타를 배우며 '어라 나 좀 재능 없는데'라고 생각하긴 했다. 최근엔 일렉기타를 배우는 중인데 이제 확실히 알 수 있다. 나는 기타를 못 친다. 그것도 꽤 더럽게 못 친다. 그런데 잘 치고 싶다. 어떻게 해서든 나의 실력을 높여 간지 나는 락키드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주에 한 번 기타 수업에 간다. 모호하게 친절하면서 건방지신 나의 기타 선생님은 애매한 배려로 날 더 서글프게 만든다. 이를테면 '이건 진짜 쉬우니까 할 수 있을 거예요'라며 새 곡을 추천한다. 내가 '띠링~' 한 번 하면 바로, '음 이 곡 말고 다른 곡 해요. 더 쉬운 거'라고 말하는 식이다. 지난주엔 이런 식으로 노래가 3번 바뀌었다. 나도 자존심이 있으니 그만 바꾸라고 말하자 곡이 고정되긴 했는데,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진 날 보더니 '띠딩' 소리가 날 때마다 '와우!', '멋져요!'라고 추임새를 넣는다. 정말 열받는다.


  성인 취미란 건 재능 없는 허접 시절을 어떻게든 견디는 일이다. 솔직히 허접도 나에게는 과분한 수식어다. 개허접이면 모를까. 도대체 얼마나 지나야 개허접에서 허접이 될 수 있는 걸까? 대체적으로 많은 걸 잘해서인지 개허접 상태를 더욱 견디기 힘들다. 죽기 전에 기타 치면서 노래라도 한 곡 뽑을 수 있긴 할까? 차라리 이게 직업과 연관된 거라면 그만둘 텐데 취미라 오기가 생긴다. '원래 다 그런 거겠지?' 하는 희망과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못 치진 않을 거 같은데'라는 절망 사이에서 샤브샤브가 되는 중이다.


  그만 두기엔 나의 로망과 기타 값이 아까우니 그만 둘 순 없다. 그래 견뎌야지 뭘 어째. 인생 즐겜러로 살고 싶은데, 열이 받는단 게 문제다. 일 년 뒤 내가 노래를 부르며 기타를 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정말 미지수지만, 그때 봐서 결과를 밝힐 예정이다. 취미가 이렇게 어려운 거다. 꾸준히 허접인 자신을 견디며 취미 생활을 영위하는 전국의 성인들이야말로 정말 멋진 사람이다. 초점 잃은 교무실 선생님들도, 지하철에서 골아떨어진 직장인들도, 편의점에서 술을 사는 아주머니 아저씨도, 사실은 굉장한 인내력과 평정심을 가지고 있다. 세상엔 힘을 숨기며 살아가는 은둔 고수들이 지천에 깔려있는 것이다. 나도 어떻게든 견디며 그들의 반열에 올라봐야지. 그만둘 수 없다면 시간으로 밀어붙인다. 열정적인 한 시간보다 대충 꾸준히 한 10년 치의 경험이 더 클 거라 생각하며 제발 저 락키드 되게 해 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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