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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와 별자리 점과 사주와 애니어그램

아무 말 모음집_일리가 있나_초안.txt

by 이육공

"안녕하세요 INFP 염소자리 불사주 8번 유형 인간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으니 다시 설명하자.

"안녕하세요, 내향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감정을 더 중시하는 무계획 인간이지만, 일 못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다소 독단적 파시스트 같은 경향이 있으며, 그 와중에 인류애를 가지고 있는, 다재다능하며 예술적 감각을 소지한 독불장군 같은 사람입니다."

후반부의 설명은 조금 히틀러 같다. 극단적인 설명들만 모아 보면 '우울하고 소심한 눈물 많은 찐따인데 목소리 크고 자기주장 강한 독재자'가 된다. 정리하고 보니 진짜 히틀러가 된 듯하여 조금 기분이 상했다. 히틀러가 설마 INFP 8번 유형 불 사주인가? 일단 4월생이라 염소자리가 아닌 건 확실하다.


장황한 설명 속에 다소 모순적인 내용이 섞여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로만 설명될까? 어떠한 글도 인생을 통틀어 담지는 못할 텐데. 모든 사람은 다면적이고 모순적이다. 실제로 나는 내향적인데 사교적이고, 소심하지만 할 말은 해야 하며, 다재다능하나 못하는 건 더럽게 못한다. 인류애로 살아가지만 스트레스받으면 총 게임을 하며 사람을 쏴 죽이고, 그러면서 공격형 캐릭터보단 보조형 캐릭터를 선택하는 편이다. 누군가는 내게 '완전 INFP 그 자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엥? 거짓말 마, 네가 왜 INFP야!'라고 한다.


'진정한 나를 알기 위해서는 모든 테스트를 다 해보시고 종합하세요!'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무엇을 보든 당신이 담겨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 더 가깝다. 사주든, MBTI든, 어쩌고든 그냥 재미로만 보는 게 좋다. 과몰입은 늘 문제가 된다. 사람들은 간절할 때 성격검사나 미신을 찾는다. 좋아하는 사람의 MBTI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관련한 영상을 100개쯤 시청하다가 유튜브 타로에서 연애점을 보는 게 드물지 않다. 합격이 간절한 사람들은 사주와 신점을 더 선호한다. 면접을 앞둔 사람은 애니어그램을 찾을 수도 있다. 어차피 그것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다 맞는 말이다. 마음에 안 드는 이야기가 나오면 '안 맞네'라며 돌아서고, 원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다른 영상과 사람을 찾아갈 테니까. '지금은 다소 힘들겠지만 가능성이 있어요.', '네가 하기만 하면 붙겠네!' 등의 말로 마음 속 불안을 잠시나마 잠재우기 위함이다. 내가 백번 중얼거려봤자, 남이 해주는 한 마디보다 믿기 어려우니까. 돈을 내서라도 타인의 입에서 위안을 얻고 싶은 심정을 나는 너무 잘 안다. 어떻게든 믿고 싶은데 도무지 스스로는 믿을 수가 없어서, 사실은 그들의 말도 다를 바 없는데 그냥 믿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이마저도 불안이라는 파도에 금방 쓸려나갈 모래성이지만.


내 글도 아무 말이다. 누군가를 겨냥하지도 않았는데, 읽다 보면 '어? 내 이야기인가?' 할 수도 있는 그런 글. 인간은 본연적으로 고독하다.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해주는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나조차도 나를 모른다. 어쩔 때에는 길을 걷다가도 알 수 없는 진창이 나를 끌어당기는 기분이 든다. 산소의 농도는 희박해지고, 중력은 더욱 거세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 속에서 끝없이 침전한다. 맞다, 인간은 다면적이고 모순적이다. 나도 그렇다. 그리고 모두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하게 타인에 대해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생각하면, 다양성과 모순으로 인해 나와 타인이 닮은 걸지도 모른다. 아무리 반대되더라도 일부분은 겹칠 수밖에 없다는 점, 그 점 덕분에 모두의 일부만큼은 충분히 이해 가능해진다. 일부에 불과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MBTI, 별자리, 사주, 애니어그램 같은 것들이 모순적이지만 모두 나인 것같이 말이다. 그러니까 너무 깊게 외로워하지는 말자. 적당히 외롭고 적당히 안락하게, 그렇게만 있을 수 있다면 우리가 누구이든 무슨 상관일까? 이렇듯 냉소적이지만 따뜻한 상상을 한다. 원래 모든 회의주의자는 낭만주의자인 법이니까, 이러한 회의와 낭만의 한 조각을 모두에게 건네고 싶다.


ps. 사주와 MBTI의 공통된 장점은 스몰 톡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젊은 층에게는 MBTI가, 조금 나이가 있는 분들께는 사주가 아주 좋은 소재이다. 낯가리는 상황에서 어색한 정적을 물리치기 위해 간단히나마 알아두면 요긴히 써먹을 수 있다. 그래봐야 한 15분에서 30분 정도니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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