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책이 아니라 방향이 필요하다

프로젝트 : 부메랑 _ 수백 년 만에 다시 필요하게 된 스스로의 자각

by rio

르네상스의 현대판 귀환



기술은 언제나 인간보다 빠르게 진보한다.


인공지능은 초단위의 계산을 통해 금융 구조를 조정하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비트코인은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실시간 시장 균형을 조절한다.
이러한 체계는 높은 정밀성과 연산 속도를 바탕으로 작동하지만, 그 결과는 인간에게 명확한 해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이 만들어낸 속도의 구조 속에서 인간은 더 많은 질문을 떠안게 된다.


이 시점에서 요구되는 것은 모든 변수를 통제하려는 시도나, 실수를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환상이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빠른 판단이 아닌, 지속 가능한 질문을 유지하려는 태도다. 즉, 속도와 효율성이 아닌 ‘의미 있는 간극’을 확보하려는 시도이며,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체성에 해당한다.


현재의 기술 사회는 해답 중심의 체계로 이동하고 있다. 알고리즘은 예측 가능한 선택지를 나열하고, 시스템은 그중 최적화된 결과를 산출한다. 그러나 인간의 사유는 본질적으로 질문을 전제로 한다. 질문이 생략된 사회에서는 판단 능력과 윤리적 책임이 동시에 축소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해답의 구조가 아니라 질문의 틀이다. 방향을 묻는 사고의 회복이 이 시점에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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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는 해답을 제시하는 종결부가 아니다. 오히려 기술 중심 사회를 통과하며 새롭게 형성되어야 할 현대적 계몽의 문턱에 해당한다. 18세기 계몽주의가 이성과 과학을 통해 미신과 권위적 전제를 해체하려 했던 것처럼, 현대의 새로운 계몽은 자동화된 구조 안에서 인간의 감각, 판단, 주체성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동시에, 이는 과거 르네상스 시기의 흐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르네상스는 단순한 고대의 복원이 아니었다. 중세 후기, 교회와 봉건 체제의 권력이 기술과 통치 구조를 장악하던 시기에, 일부 사상가와 예술가들은 ‘인간을 중심에 다시 배치하자’는 사상적 전환을 시도했다. 이 전환은 단지 문화적 표현에 그치지 않고, 과학, 정치, 철학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며 근대 세계의 기초를 형성했다. 이후의 계몽주의, 산업화, 시민사회로의 발전은 모두 이 흐름 위에 구축되었다.


오늘날, 인공지능 기술과 자동화 시스템의 확산은 인간을 다시 구조의 주변으로 밀어내고 있다. 데이터, 알고리즘, 예측 모델은 객관성과 정밀도를 지향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 개개인의 판단, 경험, 맥락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형태의 르네상스다.


즉, 인간 중심의 시각을 기술 사회 속에 재도입하는 것이다.
기술은 방향을 선택하지 않는다. 설계되고 작동될 뿐이다.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이 새로운 흐름이 요구하는 요소는 명확하다. 속도 중심의 체계에 휘둘리지 않는 인식, 자동화된 신뢰 대신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윤리, 다수에게 유리한 구조의 설계, 그리고 기술을 수단으로 다시 손에 쥐려는 기획 능력. 이러한 요소들은 새로운 계몽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느림’이라는 조건은 퇴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선택 사이의 유예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전략이다.




이와 같은 조건 아래에서, 기술이 포착하지 못하는 인간의 요소 예컨대 물리적 신체, 오류 가능성, 완전하지 않은 이해 구조는 더 이상 약점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자원으로 재평가된다. 이는 기술이 구현하지 못하는 판단의 복잡성과, 공동체 내에서의 윤리적 분담 구조를 복원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따라서 3부는 해답을 제시하거나 결론을 맺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독자가 자기 삶의 속도와 방향을 재검토하게 하는 질문의 시작점이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야말로, 인간 중심적 기술 사회를 향한 첫걸음이자, 현대적 르네상스의 출발이다.


“기술 이후의 인간성을 지키는 일은, 다시 르네상스와 계몽을 시작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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