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베일을 벗겨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인생의 베일>은 서머싯 몸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고 쓴 소설이다. 서머싯 몸은 의학교 시절이던 스무 살에 최소한의 경비를 갖고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곳에서 책을 읽고 소설을 쓰던 서머싯 몸은 셋방 주인의 딸이 들려주는 단테의 <신곡>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다 중국으로 긴 여행을 다녀온 후 이야기를 착안하게 되었다. 그가 영감을 얻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부디, 당신이 현세로 돌아가 긴 여행의 피로를 풀게 되거든." 두 번째에 이어 세 번째 망령이 말했다네. "나 피아를 기억해 주세요. 시에나가 나를 만들고 마렘마가 나를 파괴했나니, 그 경위는 보석 반지로 나를 아내로 맞은 그가 알고 있나이다."
<인생의 베일>은 1920년대 영국과 홍콩이 배경이다. 주인공 키티는 결혼이 인생의 목표였던 어머니의 밑에서 자랐다. 아름답고 재치 있던 키티는 완벽한 결혼을 꿈꾸었지만 기회를 놓치고 쫓기듯이 세균학자인 월터와 결혼한다. 월터와 결혼한 키티는 남편을 따라 홍콩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매력적인 유부남 찰스를 만난 키티는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이를 알아챈 월터는 키티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키티는 믿었던 찰스에게 배신을 당하고 어쩔 수 없이 콜레라가 창궐한 중국의 오지 마을로 남편을 따라나선다. 세상 물정 몰랐던 키티는 그곳에서 비참한 삶과 죽음의 공포를 접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숭고한 사명에 따라 사는 수녀님들과 함께 봉사하며 키니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용서라는 실마리를 찾은 키티는 어리석었던 지난날의 베일을 걷고 비로소 참된 인생을 만난다
키티는 왕실고문변호사인 아버지와 엄격하고 냉혹한 어머니사이에서 안정적인 유년시절을 보냈다. 키티의 어머니는 그 당시에 보기 드물게 성공지향적인 인물이었지만 실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1900년대의 결혼한 여자란 남편의 지위로 순위가 매겨질 따름이었다. 키티의 어머니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편의 출세를 도모했다. 그리고 두 명의 딸에게 완벽한 결혼을 요구했다. 아름다웠던 큰 딸 키티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지만, 키티가 이름 없는 세균학자와 결혼하자 이내 관심을 접는다. 둘째가 귀족작위를 가진 남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키티의 어머니는 만족했다.
키티는 남편의 그늘 아래서 부족함 없이 생활했지만 마음의 허전함을 채울 수 없었다. 그때 멋지고 다정한 남자 찰스가 등장한다. 찰스는 성공한 남자 특유의 여유로움이 있었다. 그의 남자다움에 넘어간 키티는 자신의 남편이 별 볼 일 없다고 느껴졌다. 찰스와의 밀회를 들킨 키티는 남편인 월터에게 오히려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한다. 그러나 찰스는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부와 명예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더군다나 완벽한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도로시와 이혼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월터는 그런 찰스의 실체를 꿰뚫고 있었다. 이에 키티는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죽음의 사신이 기다리는 중국의 오지 마을 메이탄푸로 떠난다.
중국의 오지 마을 메이탄 푸네는 콜레라가 퍼져서 죽어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키티의 남편이자 세균학자인 월터는 그곳에서 콜레라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고 콜레라균을 연구했다. 하루종일 집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키티는 프랑스 수녀들이 만든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만난 수녀원장은 프랑스의 유명한 귀족이었지만 모든 영광을 버리고 가난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에서 자신의 신념을 바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 키티는 깊은 감명을 받는다. 키티는 수녀원에서 봉사를 하며 편협했던 세계관을 버리고, 인생의 달콤하고 단순한 베일을 걷어내면 만나게 되는 진정한 삶에 직면한다. 키티는 자신의 부정 때문에 괴로워하는 월터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용서를 구하지만, 월터는 자신이 만든 지옥 속에 빠져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키티는 그 모든 것들 또한 부족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인생의 베일>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프랑스의 귀족이었지만 신앙의 길을 선택한 수녀원장이다. 그녀는 귀족의 하나뿐인 딸이었다. 훌륭한 성과 부귀와 명예가 기다리는 인생을 저버리고 불모지인 중국 오지마을에 수녀원을 세웠다. 그녀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무지한 중국인들에게 신앙을 전파하고, 콜레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봤다. 함께 일하던 수녀들의 죽음 앞에서 수녀원장은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을 감쌌던 모든 베일을 벗어던지고 순수한 신앙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은 키티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두 번째는 메이탄 푹에서 만난 행정 부관인 워딩턴의 여자였다. 그녀는 몽골 왕족이었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영국인 남자를 따라다녔다. 몰락한 왕족의 쓸쓸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워딩턴 옆에 당당히 자리한 몽골여자. 키티는 그 여자를 보면서 자신의 것을 온전히 버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했다.
키티의 어머니는 자신의 삶보다 보이는 모습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화려한 베일을 드리워 추하고 부끄러운 것을 감추며 살았다. 그녀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했고, 남자의 출세가 자신의 성공이라고 생각해서 최선을 다했다. 진심과 진정한 행복 대신 평판과 명예를 중시했다. 남편을 몰아붙여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올려놓은 그녀는 곧 두 딸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시켰다.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가정,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과 말을 하며 한평생을 연기하듯 살았다.
찰스 타운센드는 세련된 영국신사이자 홍콩총독부 차관부였다. 키가 크고 잘생긴 그는 자신의 지위에 만족하며 가정에 충실한 남자였다. 아내인 도로시는 세 아들을 완벽하게 키우고 있었다. 찰스는 키티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뜨거운 사랑을 나눴지만 정작 키티가 이혼하라고 했을 때는 정색을 한다. 찰스에게 키티는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찰스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 지위와 명예와 가정을 버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키티는 안락한 가정에서 편안한 삶을 살았다.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던 철없는 여자였다. 월터의 지독한 사랑을 받았지만 찰스와 불륜을 했다. 키티는 찰스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것이라고 착각했다. 월터는 찰스가 결코 이혼하지 않을 인물임을 꿰뚫고 있었다. 키티가 찰스에게 실망하고 메이탄 푸에 같이 간다고 말했을 때 월터는 키티가 차라리 콜레라에 걸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월터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키티를 괴롭히다 결국 파멸하고 만다.
키티는 자연의 품 안에서 용서라는 해독제를 찾았지만, 월터는 자신을 배신한 아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사랑한 자신을 끝내 용서하지 못한다. 월터는 사랑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키티는 임신한 상태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다. 자신을 끝없이 얽매였던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난 키티는 아버지와 함께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 키티는 뱃속의 아이가 딸이기를 원하며 희망과 용기를 갖고 아이를 키울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녀는 다른 친구들도 각자의 가슴에 수치스러운 비밀을 품고서 호기심 어린 시선들을 피해 평생을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285
그녀는 그가 그녀에게 상처를 준 만큼 그녀도 그에게 상처를 주었기를 바랐다. 그는 이제 그녀를 중오 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증오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만 경멸할 뿐이었다. P.292
그녀 앞에 탄탄대로로 쭉 뻗어 있는 듯 보였던 길이 이제는 복잡한 미로였고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인도양의 광대함과 극적이고 아름다운 석양이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유롭게 자신의 영혼을 소유할 수 있는 어떤 곳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뼈아픈 투쟁의 대가를 치렀으니 다시 자존심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감당할 용기로 찾을 수 있으리라. P.317
<인생의 베일>은 키티라는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어리석고 불안정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품이다. 1920년대의 전형적인 여성상이었던 키티는 불륜과 배신을 통해 좌절과 고통을 만난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죽자 키티는 깊은 슬픔을 느낀다.
중국의 오지 마을에서의 경험과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자신의 신념으로 살아가는 프랑스 수녀들을 보며 키티는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한다.
눈앞의 영광과 재미에만 탐욕했던 시절을 지나 키티는 비로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어리석고 균형 잡히지 않은 인간일지라도, 잘못된 판단을 하고 실수투성일지라도 그 자체로 살아갈 이유가 있다. 누군가의 눈에 보이는 삶이 아니라 내가 만족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 키티는 인생의 베일을 걷고 원래의 나의 모습과 마주한다. 그 모습에서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11월에 서머싯 몸의 책을 6권 읽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었다. 이유는 주인공 키티의 모습에서 나와 닮은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100년이 지났지만 삶의 살아가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키티처럼 흔들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키티의 경험과 후회, 각성의 과정을 보며 나는 대리만족을 느꼈다.
남자지만 여성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장면에서는 소름이 끼쳤다. 서머싯 몸의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읽고 싶어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웬만한 막장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었다. 완전 강추인 소설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영화도 봤다. 원제가 소설의 내용과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인트 칠을 벗겨내면 비로소 드러나는 맨얼굴 혹은 진면모. 언젠부턴가 진실은 중요하지 않게 됐다.
누가 어떻게 꾸며내는지에 따라 사실은 얼마든지 달라졌다. 하지만 아무리 칠을 해도 진실은 하나다. 그것은 원판불변의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