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소설의 슬픈 왕
삼십 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삼십 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 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이제 어느 것이 나의 생각이고 어느 것이 책에서 읽은 건지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삼십 오 년간 나는 그렇게 주변 세계에 적응해 왔다. 사실 내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P.10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책을 통해, 책에서 배워서 안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하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P.12
우리는 올리브 열매와 흡사해서, 짓눌리고 쥐어짜인 후에야 최상의 자신을 내놓는다 P.26
자비로운 자연이 공포를 열어 보이는 순간. 그때까지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모든 것이 자취를 감춘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 인간을 덮친다. 이 모두가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그렇게나 시끄러운 내 고독 속에서 이 모든 걸 온몸과 마음으로 보고 경험했는데도 미치지 않을 수가 있었다니, 문득 스스로가 대견하고 성스럽게 느껴졌다. P.75
그는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았던 작가라기보다 살아있기에 글을 썼던 사람이며, 그의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매혹적인 실존의 기록이다. P.135~P.136. 옮긴이의 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