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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Jan 22. 2024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곤살로 모우레

당신은 언제 어른이 되었나요?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한 권을 고른다는 것은 옷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사기 위해 몇 번씩 탈의실을 갔다 왔다 하는 것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 옷을 살 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마지막에 입어 본다. 아무리 예쁜 옷도 나와 어울리지 않으면 안 된다.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찾으면 기분이 좋다. 자꾸 입게 된다.




도서관에 늘어선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며 책들을 구경하는 게 좋다. 책들이 많은 곳에 가면 기분이 좋다. 아직도 내가 읽어야 할 책들이 이렇게도 많구나.


읽고 싶은 책을 금방 찾을 도 있지만, 가끔은 생각 없이 책장사이를 오가며 책구경을 한다. 그러다 한 권을 꺼내 본다. 표지를 보고 내용을 상상한다. 책의 두께와 질감을 느낀다. 작가소개를 읽는다.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어볼 수는 없다. 그래서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확고한 기준을 갖고 보고 싶은 책을 찾는다. 여유가 있는 날은 천천히 책을 실핀다.  요즘은 어떤 책이 나오나? 은퇴한 학자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책들을 쳐다보고 있으면 유독 눈이 가는 책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는 도서관 신간코너에서 집어왔다. 제목이 마음을 울렸다.



 이미 어른이 된 나는 아직도 내가 언제 어른이 되었는지 모른다. 가끔 이럴 때 어른이구나 생각한 적은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진 않는다.  인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내용이 궁금하면 책을 읽게 된다. 성공한 책이 된다. 재미와 흥미라는 건 결국 궁금하다는 말과 통한다.


그런데 이 책은? 길을 걷다 너무 더워서 눈에 보이는  동네 커피숍에 갔는데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눈이 뻥 뜨이는 그런 느낌이었다. 기대없이 읽다 기분좋게 빠져들었다.



재미 때문에 읽는 책이 아니었다. 문장이 아름답고 내용은 더 좋았다. 지하상가에서 충동구매로 산 옷이었는데 마음에 꼭 드는 것처럼. 횡재한 느낌으로 한달음에 읽어 내려갔다.     


 

이 작품의 원제목은 <삼촌의 말들>이다. 도시에 사는 12살 남자아이 다리오가 여름방학 때 스페인 북쪽에 있는 작은 어촌마을에 있는 삼촌 댁에 가서 살며, 삼촌의 말을 돌본 이야기를 나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동물도 사람과 똑같아."

동물들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곳을 지나갔다. 삼촌과 숙모의 동물들이 있었고 새나 호저와 같이

삼촌네 과수원을 그냥 지나쳐 가는 동물들도 있었다. 숙모에게 그 동물들은 사람이었다. 그 순간부터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사실, 곧 동물도 사람과 똑같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이 이야기들을 자세히 기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과 자연, 또는 동물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주제들이다. 동물을 사랑하고 자연 안에서 뛰노는 모습은 이상적이고 상징적으로 묘사되고 읽는 이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렇지만 자연이 단순한 배경이 되거나 도시인들에게 한 번쯤 쉬어가고픈 도피처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건 진정한 자연의 모습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외면한 채 듣고

싶은 이야기나 하고 싶은 말들만 잔뜩 늘어놓는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는 어떨까?


12살의 나는 도시 아이다. 여름방할 때 시골집에 가는 나의 모습은 어느 도시 아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럼 가 이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었을까?


 삼촌과 숙모가 다른 인물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삼촌은 말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숙모는 더 나아가 말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단순히 말을 돌보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삼촌과 숙모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동물들과 자연을 바라보게 된다.


말들이 도살장에 끌려갈 때 흘리는 눈물이라든가 자폐증을 앓는 말들이 얼마나 힘든지. 고삐와 안장이 말을 얼마나 힘들고 아프게 하는지.


삼촌은 나에게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이 되어보라고 한다. 내 귀를 힘껏 잡아당기며 말은 이보다 더 큰 아픔을 느낀다고 한다. 아무리 안락하고 편안한 마구간을 제공하더라도 (그래서 나는 말들이 마구간을 좋아한다고 믿었지만) 삼촌은 말이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초원을 선택할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자유가 있으니까.



말을 키우고 목장을 가꾸지만 최대한 인위적이지 않게 자연에 크게 거슬리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삼촌과 숙모를 통해, 그리고 말을 가꾸며 겪는 여러 가지 일들과 삼촌이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들. 첫사랑 파울로와의 만남과 에피소드까지. 나는 그 해 여름 삼촌의 집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고.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나는 새들이 말들의 똥을 활용하는 것이 매우 좋았다. 모든 게 잘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이것을 통해 하나의 바퀴가 완성된다는 것을 알았다. 말들이 먹고 나서 똥을 만든다. 말똥이 풀들의 퇴비가 된다. 골프채로 날려진 그것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사이 생긴 똥에서 새들은 귀리 낟알을 얻는다. 나는 행복했다. 새들이 내 어깨 위로 내려앉았고,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새들은 휘젓고 삼키는 일을 다하면 다시 날아올랐다. 우리는 황량한 섬의 조난자들이라도 된 듯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p.66




140페이지의 책은 짧고 쉽게 읽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를 보냈던 건 필사할 부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읽는 모든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책을 전부 옮겨적고 싶었다. 그의 생각을 USB에 넣고 내 머리에 꽂고 싶었다. 한 줄 한 줄 음미하며 읽었다.


자연은 스스로 흘러가는 것이다. 억지로 뭔가를 만들려고 하면 힘만 들 뿐이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며 살았다. 시내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일부러 돈을 주며 체험을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이 가끔 안쓰럽다. 우리 아이들은 공부만 하다 어른이 될 것 같아서, 어른이 된 줄도 모르고 나이만 먹은 아이로 남을 것 같아서. 그래서 자꾸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를 추천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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