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 봄날 누워서 창밖을 본다. 뛰기에 좋은 날씨다. 중얼거린다. 나갈까? 일단 미세먼지먼저 체크하고. 으악. 황사가 심하잖아. 마스크 끼고 달릴 수는 없지. 내 기관지는 소중하니까.
진이 빠졌다. 왜? 말로는 언제든지 링 위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 막상 일이 닥치면 발 뺄 궁리먼저 한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다가서지 못해 안달하다가 막상 오라고 손짓하면 의심하고 돌아선다.
눈앞에 수십 개의 길이 펼쳐진다. 사거리를 넘어 육거리까지는 짐작이 가능한데 이건 해도 많다. 스파이더맨이 마구잡이로 뿜어대는 거미줄처럼 엉켜있다. 어디가 끝인지 모른다. 무엇이 중요한지 알 수 없다.
주변에서 여러 가지 좋은 소식들이 들려온다. 축하를 해 주는데, 속이 살짝 쓰리다. 나도 축하받고 싶다. 브런치 활동 1년 동안 240개의 글이 쌓였다. 글들을 모아 책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글들을 본다. 매거진과 브런치북으로 나누긴 했지만, 뚜렷한 주제 없이 중구난방으로 쓴 글들이다. 누가 내 책을 읽을까? 사람들이 수눌음 하듯 책을 사고 읽는다. 좁아진다. 점점.
에세이는 유명한 사람의 책이 잘 팔린다.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시선을 끈다. 영화배우나 운동선수의 이야기, 혹은 소설가의 에세이도 재미있다. 모르는 세상이나 알고 싶은 세계를 보여주는 글을 읽는다.
내가 쓰는 것은 에세이일까? 매번 글을 발행할 때마다 공감에세이라는 키워드를 집어넣는다. 꼭 넣을 필요는 없는데, 세 개의 키워드를 채운다는 의미다. 그렇게 넣고 보면 내 글은 공감에세이가 된다.
누가 읽을까? 평범한 아줌마의 평범한 하루가 궁금하기나 할까? 나는 이렇게 생각해. 너는 어때? 묻는다. 질문은 정확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한다.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면 함께 답을 찾아간다. 마주 앉아 편하게 얘기하듯 쓴 글들을 누가 읽을까?
기획서를 썼다. 썼다기보다 흉내 냈다. 검색하고, 책을 읽어서 원고투고하는 법을 배운다. 그들이 갔던 길을 따라간다. 혹시 채택되면 어떡하나? 하는 기대감과 이렇게 써도 될까? 하는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며 글을 쓴다. 쓰고 나서 출판사관계자의 눈으로 읽는다. 별로다.
다시 고쳐 써야 하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지인에게 봐 달라고 할까? 부끄럽다. 아직도 부끄러울 게 남아 있나? 싶었는 데 있었다. 자식이 밖에서 혼나면 화가 나듯이 내가 쓴 글이 인정받지 못할까 두렵다.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못난 자식을 품고 산다. 언젠가 스스로 빛날 날을 기대하며 우는 아이를 달랜다.
나는 왜 책을 내고 싶은 걸까?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남들에게 나눠주며 나 이런 사람이야 과시하고 싶어서? 동네친구들에게 어릴 때부터 그렇게 책만 읽더니 결국 책을 냈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몇 %?
반드시 책을 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재미와 감동을 주는 따뜻한 글로 삭막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다는 건 희망사항이다.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을 붙잡고 가끔은 하늘도 보고, 꽃도 보며 살아요.라고 하는데 공감에세이라고 할 수 있나?
어떻게 살아도 괜찮은 인생
어떤 살맨?
조꼬띠 앉아야 들리는 말
생각이 파면 팔수록 깊숙이 들어간다.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쿨하게 돌아선다. 관심 없는 척 딴짓을 한다. 생각이 절로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간절하게 기다리면서도 안 그런 척한다. 생각이 나서 글을 쓴다.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온다. 신나게 두들긴다. 그러다 툭.
생각이 들어가 버리면 정전이 된 것처럼 머릿속이 까매진다.
커튼이 열리고 무대가 보인다. 오늘 내가 맡은 역할은 집안일을 능숙하게 잘하는 가정주부다. 글을 잠깐 옆으로 밀어놓고 노트북을 끈다. 연극을 시작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