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란 말을 주고받는 것이다. 대화에서 중요한 건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이다. 잘 듣고, 상대의 의중을 파악한다. 말과 글에는 목적이 있다. 무심코 뱉은 짧은 탄식에도 원인과 결과는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벽에다 대고 말을 하는 것 같다.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속마음을 다 보여주고 싶다. 내 이야기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월요일 점심시간에 아빠를 만났다. 아빠가 나 몰래 남편에게 전화해서 둘이만 만나자고 했다. 화가 났다. 큰 딸인 나에게 못할 소리를 사위한테 한다는 것에 분노했다. 남편은 아버님 말씀이라면 꼼짝도 못 하는 사람이다. 결혼할 때부터 항상 그랬다. 남편은 나를 만난 죄밖에 없다. 내가 남편을 지켜야 한다.
남편도 이번에는 사태가 심각한 것을 알았는지 나와 같이 가자고 했다. 혼자서 아빠를 만나면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을 남편도 알았던 것이다. 가는 내내 남편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절대 안 된다고. 돈을 빌려줘서도 안 되고, 아빠에게 일말의 여지를 줘서도 안 된다고 했다. 이번 일까지 남편이 개입하면 난 정말 남편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진다. 자존심 하나로도 살 수 있는 게 인간이다. 나는 이미 아빠 때문에 많은 걸 잃었다. 남편 앞에서 더 부끄러워지기 싫었다.
오래전 우리 가족의 자랑이었던 친정집은 멸망한 왕조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잔디 깔린 넓은 마당에는 손질하지 않은 나무와 꽃들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집은 더 가관이었다. 여자는 아빠와 헤어지면서 집에 있는 모든 가구를 가지고 갔다. 10년 전 우리 집에 올 때는 가방하나 들고 왔는데, 10년 사이에 아빠에게 어마어마한 빚을 남기고 떠나면서 알뜰하게 소파와 텔레비전, 화장대와 서랍장, 그릇과 냄비, 도마, 칼, 숟가락까지 가져갔다.
화가 났다. 그 넓은 집에 남은 거라곤 작은 방에 있는 낡은 이불과 그만큼 오래된 옷들뿐이었다. 여자는 우리 집에 들어오면서 진돗개를 들고 왔는데, 안방에서 개와 잔다는 핑계로 자연스럽게 아빠를 작은 방에 몰아넣었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아빠가 괜찮다고 해서 괜찮은 줄만 알았다.
아빠는 식탁에 휴대용 가스버너를 올려놓고, 작은 냄비에 물을 끓여 사발면을 먹으며 살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그래서 소리쳤다. 이렇게 살려고 우리 보고 상관 말라고 했냐고 외쳤다. 이 꼴을 보라고. 이게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던 집이냐고 소리쳤다. 내가 사준 최신김치냉장고와 엄마가 돌아가 시 전부터 썼던 서랍장까지 가져간 여자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아빠의 빚은 우리가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십 년 동안의 통장거래명세서를 뗐다. 수상한 거래가 보였다. 아빠는 차용증도 없으면서 여자가 A4용지에 쓴 빚을 다 갚겠다고 했다. 복통이 터졌다. 자식들한테는 그렇게 똑똑한 척하면서 할 말 안 할 만 다 했던 사람이 왜 그 여자한테는 아무 말도 못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빠가 남편을 따로 보자고 했던 이유는 예상대로 돈이었다. 아빠는 당장 두 달치 이자를 내 달라고 했다. 급한 불을 끄면서 땅을 팔아서 빚을 갚겠다는 것이다. 남편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했다. 일의 순서가 그게 아니라며 아빠를 설득했다.
일은 벌어졌다. 최대한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빠가 모르는 빚까지 물어줄 수 없다. 작정하고 아빠의 이름과 주민번호, 싸인까지 차용증에 쓴 여자다. 아빠의 정확한 빚이 얼마인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남편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아빠는 소리를 질렀다. 착한 사위라면 그 정도 금액이라면 돈을 내줄 거라고 생각했던 아빠는 계획이 어긋나는 순간 돌변했다. 내가 다 책임질 테니 신경 쓰지 말라며 자리를 떴다. 평생 책임이란 걸 몰랐던 사람이 여든이 다 되어 갑자기 책임을 진다고? 그 책임이라는 게 엄마가 죽을 때까지 일하면서 지은 집을 팔고, 하나밖에 없는 과수원을 팔아서 여자빚을 갚아주는 거라고?
그렇게는 못하겠다. 억울해서 살 수가 없다. 10년 동안 그 많은 빚을 지며 여자의 딸은 네 번이나 가게를 치렸다 접었다. 딸의 결혼식을 동네에서 거창하게 했다. 여자는 돈이 나오는 일은 뭐든지 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만 원짜리 한 장을 용돈으로 준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여자를 미워했는데, 지금은 그런 여자를 데려온 아빠가 밉다. 싫다. 우리 아빠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게 슬프다.
아빠는 내게 우상이자 사랑이었다. 아빠는 말이 통하는 친구였다. 밖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만 오면 마음이 풀렸다. 아빠와 함께 있으면 무서울 게 없었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 절벽 앞에서도 안전했다. 아무리 폭풍우가 몰아쳐도 아빠는 우리를 지킬 것이라고 믿었다. 아빠는 든든한 그늘이자 가림막이었다.
내 생각이 틀렸던 걸까? 아빠가 변할 걸까? 10년 전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변해버린 모든 것들 속에 아빠가 있었다. 엄마가 죽고 석 달도 안 돼 여자를 데려왔을 때도 이해하려고 애썼다. 엄마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는 아빠가 원망스러웠지만 속으로 삭였다. 그렇게 참았던 결과가 고작 이것이다.
그 여자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13살 많은 남자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맛있는 밥을 해 줬길래 아빠는 그 여자가 만든 그 많은 빚을 다 짊어진다는 것일까? 결혼하지 않은 막내아들이 혼자 바둥바둥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게 어렵게 낳은 아들은 생각도 나지 않는 걸까? 이해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점점 화만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