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오랜만에 듣는 소리인가. 예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진 지금 나는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가 되어 하루를 살고 있다. 30년 전에 내가 지은 집에는 한때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 찼었다.
부지런한 아내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했다. 밥통에서 추가 돌아가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도마에서 뭔가를 써는 소리, 아내는 그릇을 씻을 때도 그녀만의 방식이 있는 것 같았다. 물을 세게 틀어놓고, 두꺼운 사기그릇이 깨지든 말든 박박 문질렀다. 조심성이라고는 1도 없는 사람이었다. 취사가 완료됐다는 소리가 들리면, 아내는 수건으로 손을 쓱쓱 닦고는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켠다. 아이들이 쥐며느리처럼 등을 말고 이불을 끌어올린다. 아내는 방을 가로질러간다. 누군가 발을 밟혔는지, 아, 하고 비명을 지른다. 창문을 연다. 새벽바람이 들어온다. 이불을 들어낸다. "엄마.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이불을 잡아당기고, 때아닌 이불쟁탈전이 벌어진다. 중고등학생인 딸 셋은 이미 엄마보다 키가 큰 지 오래지만, 아내는 힘이 세다. 이불을 탁탁 털며 밥 먹으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일어나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온다. 안방에서 맨손체조를 마친 내가 거실에서 뉴스를 보고 있다. 아내는 부엌으로 들어가 밥상을 들고 나온다. 착한 둘째가 엄마를 도와 밥과 국을 쟁반에 담아 나른다. 고등학생 큰 딸이 세수를 하고 있다. 화장실 밖에서 막내딸이 빨리 나오라고 문을 두들긴다.
둥근 스테인리스상에 둘러앉으면 누군가의 무릎이 닿았다. 금방 한 하얀 밥과 배추된장국, 계란프라이와 김치, 구운 김과 간장이 전부지만 밥 한 사발을 다 먹는다. 아이들이 젓가락으로 밥을 세듯이 먹는 걸 보고, 세수하고 와서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며 뒤로 물러난다. 문턱에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운다. 어딜 가나 사람이 있었고, 뭘 하든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없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다. 불을 켜면 텅 빈 집이 보인다. 불을 켜지 않고, 거실을 가로질러 작은 방에 들어간다. 비로소, 한숨을 돌리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한 달인가. 두 달이 됐나. 나에게 오빠라고 불렀던 여자가 집만 남기고 떠난 지. 모르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아니다 잘 알고 있다. 그녀가 남긴 빚은 매달 이자라는 이름으로 찾아온다. 두 번째 재촉 전화를 받았다.
동생들이 왔다. 멀리 사는 여동생이 다리를 절룩거리며 현관으로 들어왔다. 텅 빈 집을 보자 인상을 찌푸렸다. 그 꼴이 보기 싫어 방에 들어가 누워 있었다. 방문을 등지고 누워서 창 밖을 본다. 금세 따라올 듯하더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다. 가만히 있으니 달그락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오랜만에 듣는 소리인가. 밥통의 추가 돌아간다. 입에 침이 고인다. 몸을 세우고 손을 뻗어 담배를 찾았다. 어제저녁은 컵라면에 소주 한 병이었다. 입이 바짝 마르고 속이 탔다. 큰 딸이 사다 놓은 생수통이 방구석에 있었다. 딸은 그렇게 내 속을 뒤집어 놓고 나서 물을 사다 놓았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말을 하고 갔다. 미친년, 물이나 처먹으란 소린가. 했는데, 요즘 나는 딸의 말대로 하루에 생수 2개를 마시고 있다. 담배를 안주로 물을 소주 마시듯 한다.
방문이 열리자 맛있는 냄새가 들어왔다. 동생이 나와서 밥을 먹자고 했다. 못 이기는 척 천천히 일어났다. 기다렸다는 걸 들키면 안 된다. 어구 거 참.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혼잣말을 하며 어그적 어그적 걸었다. 계속 누워있었더니 다리가 그렇게밖에 움직이지 않았다. 일어설 때마다 찌릿하는 허리도 문제다.
-오빠, 국자 없어요?
-모르켜
-국자도 다 가져간 거야? 진짜 징글징글하다.
동생이 냄비를 상에 올렸다. 감자탕이었다. 동생과 마주 앉아 감자탕을 먹었다. 큰 딸보다는 덜하지만, 잔소리를 쏟아부었다. 여자들은 말을 속에 담아둘 줄 모른다. 그 여자도 딸도 동생도 여자다. 예전에는 그렇게 좋은 말만 늘어놓더니, 힘 빠지고 돈 없어지자 이것들이 아주 잡아먹을 기세로 몰아세운다. 목소리가 크고 말은 왜 그렇게 빠른지 듣고 있으면 정신이 없다. 그래도 들어야 한다. 할 수 없다. 지금은 몸을 바짝 낮출 때다.
말없이 감자탕 국물을 떠먹는다. 속이 요동친다. 그 여자는 숟가락, 젓가락도 딱 세 개만 남기고 가져갔다. 싱크대 서랍에 있는 비닐까지 다 챙겨갔다. 그런 생각을 하니 욕지거리가 나왔다. 나오는 걸 못 나오게 하느라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밥은 맛이 있었는데 무슨 맛인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