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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Apr 03. 2024

패밀리 모스키토

아빠가 대형사고를 쳤다.

딸은 시집가면 출가외인이라며 평소에는 전화 한 통 안 하던 양반이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다. 아무리 가족이지만 목소리가 항상 반가운 건 아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어떤 폭탄이 터질까 조마조마한다. 


아빠는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동생인 고모에게 전화해서 나를 설득해 달라고 했다. 오전에 고모전화를 받았다. 고모는 너네 아빠가 잘못산 건 없지 않냐고 했다. 우리 오빠라서가 아니라 정말 너네 아빠 고집세고, 자기밖에 모른다며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그래도 어쩌겠느냐는 고모에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아빠를 도와줄 여력이 없습니다. 김서방 얼굴 보기도 미안해서 얘기도 못 꺼내겠습니다. 아빠 살리려고 우리 가정을 파탄낼 수는 없는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평소엔 아빠 일이라면 만사를 제치며 해결하려고 들었던 나였다.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고 강한 남자인 줄 알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아빠가 안쓰러워서 웬만하면 아빠가 하자는 대로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4개월 만에 12살 어린 여자를 우리에게 소개해 줄 때도, 아빠가 마음이 허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속이 문드러져도 아빠가 행복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속이며 살다 보니 꿈자리는 항상 사나웠고, 아빠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기분이 더러웠다. 내가 못된 아이였음 했다. 내 예감이 잘못된 거고, 제발 아빠가 맞기를 빌었다. 아빠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아빠는 점점 다른 사람처럼 변해갔다.


패밀리 모스키토


유튜브에서 낯선 단어를 들었다. 진행자는 웃으며 요즘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아빠를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 없었다. 큰 딸인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K장녀라는 말에도 담담할 수 있었던 건, 우리 아빠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날 너무도 사랑했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맞나? 정말일까? 


아빠는 자신이 남들과 다를 줄 알았다며 인생을 헛산거 같다고 했다. 내가 가도 침대에 누워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 아빠가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우울증에 걸린 건 아닐까 싶어 걱정됐다. 


그래서 다정하게 대했다. 예전처럼 아빠 말을 잘 듣는 큰 딸이 됐다. 그러자 아빠는 다시 돈 얘기를 꺼냈다. 아빠가 나한테 바라는 건 따뜻한 관심이나 애정이 아니었다. 네가 날 사랑하는 만큼 돈을 내놓아라.


소름이 끼쳤다. 있는 정들 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더 이상 남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었다. 결혼하고, 아이 셋을 낳으며 어른이 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아빠를 찾는 아이였다. 이번에 확실하게 알았다. 그리고 모진 마음을 먹었다. 내가 아빠에게 독립했듯이, 아빠도 정신 차려야 한다. 아빠가 벌여 놓은 일을 수습하라고 자식이 있는 게 아니다. 


아빠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엄마가 있을 때는 엄마에게, 엄마가 죽자 딸 셋에게 매달려 살았다. 사랑한다며 데려온 12살 여자가 있을 때는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여자는 아빠에게 돈이 떨어지자 떠났다. 10년 동안 살며 수억 원의 빚을 졌다. 참 대단한 여자다. 설날에 세배하러 간 손주들에게 돈이 없다며 세배도 안 받겠다던 여자였다. 빚으로 먹을 거 다 먹고, 살 거 다 살면서 하하 호호 살다 대출이자 무서워 도망간 여자다.


아빠는 입버릇처럼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했다. 작은 시골 동네에서 아빠는 그렇게 보였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았다. 다른 집 아빠들이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참고 희생하는 시간에 아빠는 밖으로만 돌았다. 아빠 말이 맞다. 아빠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당분간 연락을 받지 않을 생각이다. 마음 같아선 속에 있는 말을 다 쏟아내고 싶지만, 막상 아빠 앞에서는 눈물 먼저 나온다. 글이 필요한 이유다. 


나는 아빠가 싫다. 밉다. 섭섭하고, 원망스럽다. 왜 그렇게 밖에 못 살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알았던 아빠의 모습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게 속상하다. 좋았던 기억들로 오늘을 살고 있었는데, 아빠는 이미 지나간 일들이라며 다 필요 없다고 한다. 과거보다 현재에 충실했던 아빠는 왜 당장 내일 일은 예측하지 못했을까. 그렇게 잘나셨으면 제발 혼자서 해결하세요. 시집간 딸들에게 전화해서 너도 늙어봐라. 자식들 애지중지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 악담이나 날리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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