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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Jul 24. 2024

꿈꾸는 듯

나는 꿈을 자주 꾼다. 아는 사람들이 나오는 선명한 꿈은 일어난 후에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꿈속에서 전쟁을 치르고, 하늘을 날며, 좀비와도 싸운다. 그렇다. 나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난 후에 잠을 자면, 꿈속에서 2부가 시작되는 사람이다. 



더러운 실외 화장실을 맨발로 걷거나 용변이 급한데 푸세식 화장실일 때가 있다. 자면서도 냄새가 날 것 같아 인상을 쓴다. 분명 완벽하게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시험지를 받는 순간 백지상태가 되거나, 시험장소를 착각하는 꿈을 꾸고 나면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않는 지금에 안도하며 정신을 차린다. 꿈을 꾸며 나를 생각한다. 



가끔 연예인꿈을 꿀 때가 있다. 정우성이나, 서태지, 조인성, BTS의 지민이와 사귀거나 썸을 타는 꿈을 꾸고 나면 기분이 좋다. 달달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나면 연애하는 꿈을 꾸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아들의 발길질에 잠이 깬다. 한 번 깨어진 꿈은 되돌릴 수 없고, 차은우의 고백을 받은 썸녀에서 세 아이와 북적이며 자는 현실아줌마로 돌아온다.



어젯밤에도 꿈을 꾸었다.



나는 주우재와 사귀는 사이였다. 나란히 앉아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는데, 주우재가 핸드폰을 보여 주는 순간 안경을 벗고 몸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주우재가 쳐다보든 말든 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핸드폰을 보는데 글씨가 너무 작았다. 화면에 뭔가를 적어야 하는데 칸이 작아서 글씨를 쓸 수 없었다. 자꾸 틀리는 나에게 주우재가 화를 냈다. 노안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다 말고 잠이 깼다.



꿈을 꾸면서도 노안인 내가 우스웠는데, 깨고 나서는 마음이 싸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꿈속에서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는데, 이제는 꿈도 같이 늙은 것 같았다. 꿈속에서는 언제까지나 피터팬이고 싶었는데.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어제 아이들과 같이 간 편의점에서 계산할 때였다. 직원이 쿠폰이 있어 사용하려는데 보이지 않아서 안경을 벗었다. 안경을 벗고 핸드폰을 앞으로 당기는 걸 젊은 남자 직원이 기다리며 보고 있었다. 그때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잠자기 전에 젊은 작가가 쓴 연애소설을 읽고 잤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진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커플의 이야기였는데, 그 시절의 나와 누군가가 떠올랐다.



나는 꿈을 자주 꾼다. 아는 사람이 나오는 생생한 꿈을 꾸고 나면 현실인지 꿈인지 혼동스러울 때가 있다. 꿈속에서 나는 사랑하고 이별하고 슬퍼한다. 고민하고, 당황하며, 도망간다. 꿈을 꾸고 나서 해석하려고 노력했던 때가 있었다. 꿈해몽사이트를 드나들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으며 어떻게든 꿈을 알려고 했다. 




대통령꿈이 길몽이라는데, 나는 네 명의 대통령꿈을 꾸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은 꿈을 그냥 꿈으로 흘려보낸다. 머릿속 어딘가에 꿈공간이 있어 나와는 별개로 드나드는 생각들이 있구나. 한다. 여전히 꿈을 꾸면서 무언가를 동경하며 살고 있지만, 멀리 있는 건 안경을 써야 보이고, 가까이 있는 건 안경을 벗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긴 요즘은 그저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살고 있다. 꿈이 나를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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