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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Aug 01. 2024

우리 집에 파랑새가 산다

일 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저녁산책할 겸 걸어서 마트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맞은편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젊은 여자가 카트에 물건을 잔뜩 싣고, 앞에 세 살 정도 보이는 남자아이를 태운 채 카트를 밀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옆에는 꽃무늬바지를 입은 중년 여자가 서 있었다. 횡단보도가 끝나고 인도에 올라오려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카트가 올라가기에는 인도가 높았다. 카트에 잔뜩 실린 생수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 보니 중년여자는 시어머니 같았다. 며느리인 젊은 여자가 얼굴이 빨개지도록 카트를 끄는데, 옆에서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느니, 옆으로 돌아서 오라느니.


카트 앞에 앉은 남자아이는 낑낑대는 엄마에게 손에 들은 사탕을 내밀었다. 이거 먹고 힘내.라는 의미 같았다.

신호가 바뀌고 차들이 카트를 피해 지나갔다. 서둘러 차도에 내려가 여자와 함께 카트를 밀었다. 하나 둘 셋 하며 몇 번 밀었다. 그러던 중에 목걸이의 이음새가 카트에 걸려 끊어졌다.


목걸이가 길에 떨어졌다. 카트는 인도에 올라왔고, 중년 여자는 늦었다며 빨리 가자고 했다. 여자는 연신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아이는 엄마에게 내밀었던 사탕을 입에 넣고 깔깔거렸다. 카트가 멀어졌다. 나는 길에 떨어진 목걸이를 들고 한참 서 있었다.


남편이 결혼기념일에 선물해 준 백금목걸이였다. 목걸이는 여름에 즐겨 입는 기본티를 살짝 돋보이게 해 준다. 두 개 있는 목걸이 중에 더 아끼는 거였는데. 집에 와서 남편에게 목걸이를 보여 줬더니 싫은 소리를 들었다.


오지랖도 적당히 하라며 저녁 먹는 내내 잔소리폭격이 이어졌다. 나는 다음에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고 대답했다. 내 행동에 후회는 없다. 그런데 끊어진 목걸이를 보면 그때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 년이 지나 잊고 살았는데, 오늘 까만 티를 입고 나서려고 보니 목이 허전했다. 남편과 함께 맞춘 금목걸이는 너무 과하다. 얇고 반짝이는 게 필요했다.


금은방에 가서 이음새를 고쳐야 할까? 돈이 들면 어쩌지? 아는 금은방도 없는데.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졌다. 하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뭔가를 함으로써 일거리가 생겼다.

하지만 그때 카트를 밀어준 행동을 했던 내가 좋다. 작은 선의를 행할 줄 아는 나라서 좋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자기 계발에 진심인 사람, 매일 가계부를 쓰며 알뜰살뜰하게 살림을 하는 사람, 정해진 시간에 일정한 분량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언제나 마음뿐인 사람이다. 그래서 후회하고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나를 지탱해 주는 건 예전에 내가 했던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 알고 있는 에피소드다.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운 아주 작고 사소한 일. 그렇지만 그 순간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일에 손길을 내민 기억이 넘어지려는 나를 지탱해 준다. 이름을 모르는 사람과 주고받은 따뜻한 시선은 거대한 세상을 살아가는 멋진 사람들 틈에서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준다.


그리고 쓸거리가 생긴다. 남편은 내가 상처받을까 걱정한다. 나는 선의의 마음으로 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그럴 때 남편에게 하소연을 하면 항상 너는 그게 문제라고 말한다. 신경 쓰지 말고 살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사람들이 다 너 같지 않다니까. 괜찮아. 나는 그냥 내 방식대로 사는 거야. 그 사람들은 그렇게 살라고 해. 사기당하기 딱 좋은 사람인 거 알지? 그러니까 당신이랑 결혼했지.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좋은 뜻으로 행동해도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내 마음과는 다른 방향으로 날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상처받는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다. 속상해서 울고 기서 웃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중이다. 그게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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