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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Sep 05. 2024

미련

깨끗이 잊지 못하고 끌리는 데가 남아 있는 마음.

마음에 쏙 드는 간절기잠바가 생겼다. 오랜만에 동생네 집에 갔는데, 동생이 고등학생인 조카가 입지 않는 옷이라며 언니가 입고 싶으면 입으라고 했다.



보는 순간 첫눈에 반했다. 고급스런 진회색은 은은한 광택이 흘렀고, 각이 잡힌 카라와 허리까지 오는 짧은 길이감도 좋았다. 나보다 3살이 어린 동생은 초등학교 5학년때 나와 키가 똑같아지더니 지금은 거의 10센티 차이가 난다. 동생을 닮아 조카도 키가 크다. 나는 가끔 조카가 작아진 옷을 얻어 입었다. 좋아보인다고 했더니 동생이 유럽여행할 때 영국에서 사 온 거라며, 여기는 없는 옷이라고 했다. 더 좋아졌다.



 옷을 조수석에 놓고 집에 오는 내내 입술이 씰룩거렸다. 10월에 막둥이네 반 아이들 모임에 입고 가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모임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나는 모일 때마다 옷 입는 것이 신경쓰였다. 몸이 예쁘면 청바지에 흰면티만 입어도 되지만 이제 나는 좋은 옷을 입어야 겨우 보통이 되는 나이가 됐다.



 나는 옷을 좋아한다. 친정엄마의 영향이다. 엄마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지만, 때마다 제주시에 올라와서 옷을 샀다. 감각이 뛰어나고 옷입는 센스가 좋았다. 동네 삼촌들이 뽀글이 파마를 할 때도 엄마는 꼭 제주시에서 굵은 펌을 말았다. 사람들은 엄마가 입은 옷을 부러워했고, 동네에서 제일 예쁜 엄마가 학교 공개수업에 오면 나는 어깨가 으쓱했다. 엄마는 늘 말했다. 쪼르륵한 옷을 입어야 한다고. 얼굴이 작고, 상체에 살이 없는 엄마는 굷은 하체를 가릴 옷을 입었다. 자신의 체형에 딱 맞고 어울리는 색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닮아 키가 작았지만, 엄마의 옷을 같이 입을 수 있어 좋았다.



 스무 살이 되어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사게 됬을 때도 엄마를 생각하며 옷을 골랐다. 오천원이나 만원짜리 매대에 있는 옷도 잘 고르면 예쁜 것들이 많았다. 엄마는 가격이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너는 삼천원짜리 옷을 입어도 삼만원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렇게 싸고 예쁜 옷만 입어도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 옆에는 무조건 예쁘다고 말해주는 엄마가 없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예전에는 나갈 일이 있으면 뭐 입을까 행복한 고민을 했는데, 요즘은 아무거나 입을 수 없는 격식을 갖춘 자리가 싫다. 꾸안꾸 스타일로 입고 싶은데 그것도 센스가 있어야 한다.



 동생이 준 옷을 보는 순간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딱 좋아할 스타일이었다. 이걸 입고 나갈 생각에 기분이 좋아서 동생에게 하트 백 개쯤 보낸 후, 맛있는 점심을 산다고 했다.



 집에 도착해서 옷걸리에 걸기 전 다시 입어봤다. 거울 속의 내가 제법 괜찮았다. 씩 한 번 웃고 옷걸이에 걸었는데. 카톡이 울렸다.



-언니, 그 옷 **이가 찾아. 수학여행갈 때 입을 거래.

 미안한데 다시 돌려줘야겠어.

안 입길래 언니 준 건데 아껴서 안 입었던 거래.

정말 미안해.

-ㅋㅋ 오키.

섭섭한 마음에 말이 길어지기 전에 얼른 답장을 보냈다. 가슴이 싸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동생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그 옷에 대해 몰랐다. 옷을 보고 입어본 두 세시간이 전부다. 그런데 왜 이리도 마음이 섭섭할까. 그건 보고 입어봤기 때문이다. 모르고 살았으면 아무 문제없을 일인데 알아 버렸다. 마음에 쏙 드는 옷이었는데,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 기분이 좋았는데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게 싫었다. 그런데 그 옷은 정말 내 옷일까?



손에 들어오기 전에는 몰랐지만 일단 내 손에 들어왔으니 다시 주기 싫은 걸 무슨 심보라고 해야 하나? 쿨하게 알았다고 했지만, 줬다 뺐는 게 어딨냐? 그럴거면 처음부터 주지 말지 하는 말을 꾹 참느라 뱃속이 꼬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카 옷을 가져와 놓고, 조카가 입고 가겠다는데 그것도 못 해주는 밴댕이소갈딱지같은 내 속은 왜 계속 끓고 있는지. 아직도 모를 일이다.



확 기온이 떨어졌으면. 갖다 주기 전에 한 번이라도 입고 나가보게.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린 채 어리석은 생각만 하고 있다. 마흔이면 불혹이라 흔들리지 않고, 오십이면 지천명으로 하늘의 뜻을 안다는데 공자님은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노년을 보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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