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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Sep 11. 2024

저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오랜만에 고모가 전화했다. 한때 엄마보다 더 좋아했던 고모는 지금 나에게는 엄마보다 더한 부담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고모는 아빠가 여전히 술만 마시고 살고 있다며 그래도 어쩌겠냐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고모가 하지 못한 말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너희들이 아버지를 챙겨야 하지 않겠니. 자식의 도리라는 게 있는데, 너희들이 지금 하고 있는 건 아버지를 두 번 죽이는 것이다. 빨리 내려와서 아버지를 살게 해라. 한 마디로 돈 내놔라.


 아빠보다 열 살 어린 고모는 말로는 아무리 내 오빠라도 정말 밉다고 욕하지만, 팔은 한 번도 밖으로 꺾어지지 않는다. 팔이 안으로 굽는 건 편하기 때문이다. 뭐든 거꾸로 하는 건 힘이 든다. 고모가 아빠를 챙기는 건 동생 된 도리이고, 조카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도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하는 거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일까? 나와 동생들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토록 무거운 짐을 지고 시는 걸까? 자신의 모든 불행이 자식들 때문이라고 말하는 아빠를 앞에 두고 그래도 자식이니까 참고 아빠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줘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 앞에서는 고생한다고 하면서 돌아서면 불행한 아비를 돌아보지 않는 냉정한 새끼라고 손가락질한다. 알고 있다. 그들이 내게 접근하고 말을 거는 건 내일 다른 이들에게 퍼뜨릴 안주거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장단에 놀아난다. 알면서 널을 뛴다. 장구소리가 울리면 춤을 멈출 수 없다. 의지란 종잇장처럼 가벼워서 누군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네 엄마를 생각하라고 하면, 나는 그만 말 잘 듣는 딸이 된다. 아빠에게 간이며 쓸개를 다 빼주고 나서 돌아서면 아빠는 부족하다며 소리를 지른다. 


네 말을 믿었는데, 네 말대로 했는데 이 모양 이 꼴이 됐다며 세상의 모든 불행이 마치 나 때문에 일어났다는 듯이 원망 섞인 말을 퍼붓는다. 너도 자식을 키우고 있으니 나중에 두고 보자는 말을 내뱉는 순간. 네. 아버지 저는 당신 같은 부모가 되지 않으려고 이렇게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부모가 되어 보니 알겠더군요. 당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했는지. 적어도 제대로 된 부모라면 나는 굶어도 자신입에는 뭐라도 넣어 주고 싶고, 나는 거지 같아도 자식은 비단옷을 입히려고 노력하는데 당신은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뿐이군요.


감사합니다. 이제라도 당신과의 인연을 끊게 해 줘서. 그토록 강렬하게 당신이 외치시니 저도 답을 해 드리지요. 안녕히 계십시오. 당신의 부고를 들으면 달려와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겠습니다. 저주는 부메랑이라 당신을 저주하면 내게 닿을까 모진 말은 삼킵니다. 자식의 심장을 갈가리 찢어놓고도 부모행세를 하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는 이미 당신을 떠났습니다. 한때 당신을 아빠로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그 기억마저 무색하게 만든 건 당신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당신이 뿌린 씨는 부디 당신이 거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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