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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Jul 18. 2024

보이지 않는 것들

엄마의 12번째 제사에 동생 세 명이 불참했다. 제사 이틀 전 동생들에게 전화하며 알고 있었지만, 막상 아무도 오지 않으니 마음이 싸했다. 그래도 엄마제사인데 내려가야 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건 언니 생각이고,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말에 알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3살, 6살, 17살 차이 나는 동생들은 어떤 때는 마음이 잘 통하는 것 같아도 또 어떤 면에서는 철벽이 느껴질 때가 있다. 형제자매라도 함께 살아온 시간보다 떨어져 혼자만의 세월을 견딘 시간이 더 많은 요즘은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며 멀리서 응원하는 것으로 혈육의 정을 이어가고 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엄마의 제삿날에 오지 않겠다고 하는 동생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사실 내 마음도 반반이었다. 



제사 전에 친정에 내려가 아빠를 만났다. 제사를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정 안 되면 물이라도 떠놓고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빠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좋게 말하면 허례허식보다 마음을 중시하는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책임감이 없고 편한 대로 살았다. 



일 년에 12번이 넘는 제사와 음력 초하루마다 문전상을 차려 제를 지내는 건 엄마몫이었다. 제사를 차리는데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대충 차리라고 말하면 끝나는 사람이다.



아빠는 70이 넘은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가보니 고모와 고모부, 작은 아빠와 오촌 삼촌이 앉아 있었다. 늦은 저녁이었다. 아이들이 엉거주춤 들어가 인사했다. 영정사진 속 엄마는 늙지 않았지만 제사상을 받아서 그런가 왠지 슬퍼 보였다. 



혼자 사는 아빠의 집에는 없는 게 많았다. 같이 살던 여자가 떠나며 숟가락 하나까지 가져갔다. 아빠는 가스버너에서 하나 있는 냄비에 찌개를 끓여 먹으며 살고 있었다. 쓰레기 담을 종량제봉투를 사러 집 옆에 있는 편의점에 갔다. 엄마와 친했던 동네삼촌이 하는 곳이었다. 



삼촌은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웃어줬다. 이런저런 안부를 주고받다 말고 아빠와 살던 여자의 포악질과 늙은 아빠의 형편없는 생활에 말이 이어졌다. 나보다 아빠를 더 많이 보고 사는 삼촌이 말했다.

종교 미술 조각품 - Pixabay의 무료 사진 - Pixabay



-너는 할 만큼 했다. 수지나. 이제랑 아빠 신경 쓰지 말고 너 살길 찾아라. 나도 결혼해서 사는디 무사 모르크냐.


 친정이 이렇게 되면 네가 얼마나 불편할 거니. 아무리 착한 남편이고,  돈이 많아도 친정에 갖다 바치는 거 좋아할 사람 어신다. 니 속이 문드러지는 거 다 알암쩌.


 경 허난 이제랑 그만해도 된다. 솔직헌 말로 니네 아방 이제라도 확 죽어불민 니가 허꼼 편할거주만은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느냐. 아방은 아방대로 어떵이라도 산다게. 너도 너미 잘허잰 허지 말라.  속 끓이멍 살지 말아.



아무도 해 주지 않는 말을 동네삼촌이 했다. 사람들은 나만 보면 똑같은 말을 했다. 근심 가득한 얼굴로 

" 큰 딸이니까 네가 좀 도와줘야지 어떡하겠냐.

 그래도 아빤데 네가 좀 더 이해해라."




 꼼꼼하고 계산적인 남편이 친정일을 물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번듯한 친정은 바라지도 않았다. 부모에게 돈 대신 사랑과 추억을 받았다고 생각해서 고마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과 내가 올라탄 시소는 균형을 잡지 못했고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한 번도 괜찮은 적이 없었다. 동생들은 하고 싶은 말도 잘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언니도 그렇게 살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못 하겠다. 이렇게 해도 힘들고 저렇게 해도 속상하다. 다 밉고 싫다. 그래도 걱정되고 안쓰럽다. 마음이 요동치는데 도무지 잡지 못한다.



동네삼촌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계산대를 가운데 두고 60이 넘은 동네삼촌과 나는 돌아가신 엄마 얘기를 하며 울었다. 엄마의 제삿날에 어울리는 눈물이었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엄마를 기억해주고 있다. 그리고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지만 가끔은 말로 듣고 싶은 마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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