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Four Quartets

무대 위에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길고 납작한 가벽 두 개가 세워져 있다. 어두운 무대 위에 한 사람이 조용히 등장하고 나지막히 말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른 등장 인물 없이 혼자서 뭔가를 계속 읊조리는데, 그것은 독백도 방백도 아니다. 바로 T.S.Eliot의 Four Quartets이라는 시를 읊고 있는 것이다. 무대 위의 사람은 책상 앞에 앉기도 하고 가벽을 이리저리 옮기기도 하고 때로는 침묵하기도 하면서 약 70분간의 낭송을 이어간다.

고등학생 때 이과였음에도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은 국어, 그 중에서도 문학이었다. 친구들이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고전 문학까지도 사랑했었다. 모두 흑역사 하나쯤 품고 있다는 싸이월드에 마음에 드는 시를 써 놓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시라는 장르 자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설과 수필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읽었었는데, 시만은 국산만 고집하게 되었다. 영어로 된 시를 번역한 것은 몇 번을 읽어도 내게 큰 감흥이 오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그 이유를 연구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시가 가지는 그 말의 '맛'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이나 영화 번역에 있어서도 의역이 많은 것은 그 말의 의미와 함께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는데, 그 언어의 맛의 정수를 모아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장르인 시에서는 그것이 훨씬 어려운 것 같다. 게다가 T.S.Eliot은 철학을 공부했었고 Four Quartets은 그의 후기시의 절정이라고 하니, 철학에도 문외한인 내가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냐고 어쭙잖은 변명을 덧붙여 본다.

그래서인지 이 긴 시를 낭송하는 공연에서 졸지 않고, 중간에 퇴장하지도 않고 끝까지 앉아 있었는데도 무슨 말인지 거의 알 수가 없었다. 시간과 장소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가 들어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하지만 말의 어조가 고조되거나 조명이 어두워지거나 배경 음악이 낮게 깔리거나 하는 비언어적 장치들 덕분에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공연 예술에서 대사와 가사 이외의 연출적 효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으로 깨달았달까. 그리고 한국에도 좋은 시들이 정말 많은데 낭송 공연을 하는 것은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예를 들어 이상의 시 오감도를 각각 다른 낭송자가 읽으며 해당 시와 연관된 이미지를 스크린에 보여준다든가. Four Quartets이 관객들에게 호불호가 엄청 갈려서 어떤 분은 감동 받아서 울면서 나오기도 하고 어떤 분은 시간과 돈 낭비 했다며 씩씩거리며 극장문을 나서기도 했는데, 아마 그렇게 되려나.

이전 05화공연장 Bar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