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연 Aug 09. 2023

모든 일의 해결책은 원인에 있을까요?

어디가 고장 났다고 느끼는 당신에게


당신에게 용기를 내어 첫 번째 편지를 부쳤습니다. 제 편지는 잘 수신하였는지요.

편지를 보내고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신은 당신 앞에 놓인 순간들을 잘 흘러 보내고 있는지요. 잠을 자다가 악몽에 시달리거나 갑자기 깨질 듯한 두통으로 머리가 아프진 않나요. 악몽에 시달리다가 불현듯 눈을 뜨면 여기가 어딘가 싶진 않던가요. 그러고 다시 눈을 감아도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어, 뜬 눈으로 내가 걸어온 길을 더듬더듬 손으로 짚어가며 되돌아가지는 않았는지요.


사진: Unsplash의Álvaro Serrano


두 번째 편지에서 저는 당신에게 고백을 먼저 해야겠습니다. 

저는 확신을 했습니다. 제 병듦의 원인을 찾아내면 이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고요. 

그 확신은 아주 오래전에 뿌려진 씨앗이라 제 마음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길고 튼튼한 나무줄기를 뻗었습니다. 무성한 잎도 피워 올렸지요. 혹시 당신의 마음에도 그런 나무가 한 그루쯤 있는지요. 그래서 원인은 찾으셨는지요. 아니, 제가 원인을 찾았는지부터 이야기해야겠군요. 


사진: Unsplash의Blaz Photo


도서관에 꽂힌 수많은 책의 페이지를 면밀하게 살피는 사람처럼 제 속에 꽂힌 책들의 모든 페이지를 다 훑어보았습니다. 어딘가 단서가 숨어들었을 것 같아 책등을 집어 들고 탈탈 털어도 보았지요. 팔랑하고 책 사이에서 떨어진 첫 번째 단서는 엄살이었습니다. 

제가 입은 수많은 옷과 장신구를 벗겨놓고 보면 저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쭉 생각하고 사십여 년을 살아왔지요. 나는 그렇게 훌륭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도 아닌데, 그렇게 괜찮은 엄마가 아닌데 뭐가 이렇게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는 걸까. 뭘 잘하는 게 있다고 번아웃까지 앓는 것인가. 

하지만 그 원인을 아무리 제 마음에 던져대어도 답이 튀어나오지 않았습니다. 분명 답이 틀렸거나 잘못 던졌을 테지요.


사진: Unsplash의Jackson Hendry


제일 먼저 병원을 찾아갔을 때 주치의는 제게 '탓하는 마음'이라는 단서를 꺼내어주었습니다. 

제 스스로 저를 너무 탓한다고 합니다. 백 가지 일 중에 아흔아홉 가지를 잘해도 한 가지를 못하면 저는 그 한 가지를 마치 백 가지처럼 받아들이는 거지요. 그 사이 아흔아홉 가지는 길을 잃고 증발해 버립니다. 왜 그 한 가지를 못 했는가. 왜 나는 완벽한 백 가지를 위해 더 노력하지 않았던가. 자책하고 반성합니다. 그래도 그 일은 반복됩니다.


사진: Unsplash의Colin + Meg


그렇게 며칠을 저를 두고 두어 발자국 떨어져서 관찰한 뒤에야 알게 됐습니다. 이미 저는 백 가지를 다 잘 할 수 없게끔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요. 그리고 세상에는 제가 꿈에 그리는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요. 그저 제 머릿속에 있는 환상 같은 것이었습니다. 완벽이란 단어는 잡히지 않는 구름이었습니다. 

혹시 당신도 저처럼 완벽한 무엇을 위해 열심히 달리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혹은 실수에 관대하지 못한 사람인가요. 

아니요, 제 말은 실수에 관대해지란 게 아닙니다. 실수를 했다면 왜 실수를 했는지, 앞으로 실수하지 않도록 어떻게 할 것인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다만, 자꾸 되짚어가며 내가 왜 실수를 했는지를,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계속 뱉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말들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미래에도요. 우리의 일에도요. 우리의 마음에 생채기만 내고 유령처럼 사라질 뿐입니다. 



사진: Unsplash의Nathan Anderson


전 몇 달을 제 스스로 낯설게 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내가 한 일과 나를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이지요. 그럼 원인을 찾지 않을까 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어요. 마음에서 한두 발자국 떨어져서 나를 보는 게 처음부터 잘 되겠습니까. 그때마다 노트에 메모를 했어요. 내가 겪은 일, 내 감정, 그리고 사실을 정리했지요. 그러고 나면 나의 극대화된 감정과 시선에서 분리된 진짜 사실이 차츰차츰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사진: Unsplash의Jonathan Kemper


그렇게 한 달 정도를 훈련했더니 알겠더라고요. 원인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요. 

세상에 없는 완벽을 추구했던 나.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던 나. 

스스로를 자책하고 못살게 괴롭혔던 나. 

실수를 계속 되새김질하며 압박감을 느꼈던 나. 

쉼 없이 자투리 시간까지 자기 계발에 애썼던 나. 

미래가 불안했던 나. 

불안한 미래 때문에 잠이라도 줄여가며 더 배우고 익히는 데 힘썼던 나. 


그리고 그렇게 살라고 재촉하는 내 주변의 환경과 불안한 미래와 이 사람들과 사회까지.


사진: Unsplash의Adi Goldstein


원인은 알게 되었는데, 그럼 해결책이 나오는 걸까요. 

원인이 너무 많아서 저는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저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런 원인을 알을 품듯 품고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지요. 

당신은 어떤가요. 제가 말한 원인 중 당신이 품은 원인도 있나요. 아니면 혹시 다른 원인을 품고 있나요.

 

우리는 태풍 속을 걸어온 사람 같습니다. 바람이 몸을 흔들며 불고 비가 빰을 내려치고 강물이 불어나고 옷은 흠뻑 젖었습니다. 원인은 비도, 바람도, 강물도, 젖은 옷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지금 나를 둘러싼 모든 게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럼 원인을 알았으니 비를 없앨 수 있나요. 

강물이 불어나지 않게, 옷이 마르게, 바람이 멈추게 할 수 있나요. 

당신은 제가 어떻게 했으리라 생각하시나요. 


사진: Unsplash의Danielle Dolson


저는 지금 방향을 찾은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을 못 찾은 것도 같습니다. 

적어도 태풍 속에서 쉬어갈 작은 오두막을 찾아 들어온 기분입니다. 

원인 속에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비와 바람과 강물과 젖은 옷이 나를 괴롭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비와 바람과 강물과 젖은 옷을 치워버릴 수 없듯이요. 

하지만 원인을 알게 되면 적어도 내가 지금 어디를 걷고 있는지는 알게 되지요.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의 얼굴은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지요.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오두막 찾기가 시작됩니다.


오늘, 당신도 차분하게 앉아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들의 이름을 명명해 보세요. 명명한 것들이 실체를 갖게 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오두막으로 가는 방향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전 01화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