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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Oct 18. 2023

내가 번아웃이라고 밝혀야 할까

가족에게? 직장 동료에게? 혹은 친구들에게?

당신이 세 번째 편지까지 잘 수신했는지 궁금해집니다. 

저는 몇 번의 편지까지 당신에게 보낼 수 있을까요. 열 번째 편지를 보내고 나면 나는, 당신은, 아니 우리는 조금이라도 나아진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오늘 문득 당신은 가족에게 아프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을까 궁금해졌어요. 친구들에게는 고백했나요? 혹은 어쩌면 직장 동료에게는요?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화나 우울감이 심해지면서 가족은 제 상황을 알 수밖에 없었어요. 전 가족에게 고백하는 일을 제일 먼저 했던 거 같아요. 그 일은 내 상황을 받아들이는 첫 발자국이었어요. 남편에게 말하고, 엄마에게 말하고. 병원을 다녀와서 2주에 한 번씩은 퇴근이 늦어질 거란 이야길 어렵게 꺼냈지요. 어쩌면 나보다 더 충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의외로 가족은 의연했어요. 안 되면 회사를 관두는 일을 생각해 보라는 권유도 잊지 않았지요. 


친구들에게 말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종종 보았던 친구들이 근황을 물어올 때 농담처럼 가볍게 전하곤 했지요. 자세하게 말하지는 못했어요. 약을 복용 중이라거나 괴로워서 휴직할 생각이라는 데까지 전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래도 번아웃이라는 말에 친구들이 건네는 위로는 제각각 다르고, 또 힘이 되었어요. 

열심히 살았으니 쉬어갈 때인가 보다 라는 말이나 밥을 사주겠다는 사소한 위로가 큰 안식을 가져다주었지요.


사진: Unsplash의Julie Blake Edison


제일 큰 고민은 직장 동료였습니다. 사실 제 떨어진 집중력과 업무 속도, 휴직하게 되는 이유 등에 대해 동료들에게 말하는 건 너무 어려웠거든요. 차짓하면 나에 대해 편견을 가질 수도 있을 테고요. 우리는 함께 일했지만 또 각자의 일을 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휴직을 떠나는 일주일 전까지 털어놓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마 직장 동료들은 제가 다른 이유 때문에 휴직하는 줄 알았을 거예요. 3개월 동안 제가 자리를 비움으로 직장 동료들이 떠안게 될 업무에 대한 미안함도 컸습니다. 


그들에게 미안하다면 적어도 왜 내가 자리를 비우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설사 나에 대한 편견이라도 가지면 어쩌지. 

두 고민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마음이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가는 일도 적지 않았지요. 

휴직할 때 저는 어쩌면 회사에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3개월을 쉬어보고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면 회사를 관둘 생각도 했지요. 생각의 갈피가 거기까지 펼쳐지자 동료들에게 이유는 알려주어야 납득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설사 저에 대한 편견이 생기더라도요. 혹은 나쁜 소문이 돌더라도요. 


사실을 조심스럽게 털어놨을 때 다행히 동료들은 저를 이해해 주었어요. 쉬다가 나아지지 않으면 더 쉬다 오라는 이야기도 했지요. 그들은 제가 일하면서 느꼈던 것처럼 따뜻한 사람들이었어요. 아주 오랜 시간 고민했던 마음속 먹구름이 순식간에 걷혔습니다. 


이건 저의 이야기예요. 당신은 어쩌면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해야 할지 말지는 당신 선택에 달린 문제일 테니까요. 다만, 따뜻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나와 밀접하게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조심스럽게 '번아웃'이라는 정도만 전달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모두 서로가 서로를 돌보면서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니까요. 그 사람도 어쩌면 우리일지 모릅니다.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어쩌면 든든한 연대가 될 수도 있지요. 

조심은 필요합니다. 편견이나 오해를 가질 수 있는 분이라면, 나를 잘 모르는 상사라거나 먼발치에서 보기만 했던 다른 팀 동료라면 굳이 나에 대해 알릴 필요는 없겠지요. 


사진: Unsplash의Toa Heftiba


당신이 만약 털어놓을지 말지를 고민한다면 오늘 제 편지가 작은 도움이라도 됐길 바라봅니다. 

번아웃임을 말하면서 알게 된 건 제 주변에 많은 이들이 저처럼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단 사실이에요. 어쩌면 지금은 번아웃의 시대일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는 어디서 이렇게 소모되고 소진됐던 걸까요.


다 같이 모여 어깨라도 두들겨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 정말 열심히 살아왔어요. 당신 자신에게 그 말을 건네주세요. 당신의 옆자리 동료에게도,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요. 


아픔을 고백하면서부터 저의 연대는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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