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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Oct 19. 2023

온전히 쉴 수 있을까(1)

번아웃에 시달리다가 3개월을 쉬게 된 사람의 이야기

1년 넘게 번아웃에 시달리며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았어요. 

번아웃에 관련된 책을 읽고,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고, 점심시간엔 공원으로 나가 여백을 가졌지요. 아침에는 수영을 배웠어요.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기쁨은 잠시나마 해방감을 가져다주었어요. 매일 자기 전에 나의 마음을 돌아보았고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에 대해서 내 탓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지요.


사진: Unsplash의Jong Marshes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는데도 상황은 엇비슷했어요. 조금 좋아졌다가 다시 일에서 압박감을 느끼거나 무력감을 느낄 때면 마음은 더 안 좋아지는 듯했지요. 별 수 없이 저는 지금이 쉬어야 할 때임을 받아들여야 했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지만, 번쩍 손을 들고 항복해야 했어요.

지금 쉬지 않으면 더 큰 피해를 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어요. 어쩌면 지금 잠깐 쉬고 돌아오는 게 더 멀리 달릴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 싶었지요. 


사진: Unsplash의Clément Falize


회사에 말한 건 3개월 동안 휴직이었어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저는 완전히 쉴 수 있을까요. 휴직을 앞두고도 자리를 비운 동안 일어날 일에 대해 가이드를 만든다고 바빴지요. 얼추 준비가 끝날 무렵 휴직이 시작되었어요. 


당신은 휴가 때 온전히 쉬어 본 적이 있나요. 저는 잘 없어요. 

진행 중이던 일을 걱정하거나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나 문자를 줄곧 받고 했지요. 그건 아마 제 일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어요. 

15여 년을 그렇게 일하다 보니 이제 휴가 때 저는 앨리스가 된 것처럼 시시때때로 이상한 일의 나라 속 구덩이로 쑤욱 미끄러져 들어가는 게 익숙했어요. 다만, 그렇게 구덩이로 들어가게 되면 얼마를 쉬든 쉰 거 같지 않은 기분이었지요. 해변가에 있어도 제 영혼을 사무실에 두고 온 듯했지요.


3개월 동안 휴직을 앞두고도 그런 걱정이 저를 휩쌌어요. 3개월 쉬는 게 소용이 있을까 없을까는 둘째 치고 온전히 쉴 수 있을까. 심지어 저는 엄마로 아이들을 챙기는 일도 해야 하는데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일주일만 나 혼자 멍 때리다 오고 싶다. 그 생각이 간절했지요. 



사진: Unsplash의Camille Minouflet


몇 가지 규칙을 세우기로 했어요. 일단, 아이들이 등원한 뒤 10시부터 하원하기 전인 16시까지는 내 시간으로 갖는다고 명명했어요. 그 시간 중에서 2시간은 집안일을 했어요. 사실 온전한 내 시간은 하루에 4시간뿐이었지요. 

연이어 세운 규칙은 이거였어요. 4시간 동안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 글을 쓰지도 않는다. 마케팅 뉴스처럼 일에 관련된 것도 보지 않는다. 그저 나를 채우는 데 힘쓴다. 

4시간 동안 저는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그저 오래 걷거나 공원에 나가 멍하니 바람결을 느꼈어요. 근방에서 열리는 전시회란 전시회는 다 보러 다니고 커피 한 잔을 시켜두고 카페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어요.



사진: Unsplash의Dingzeyu Li


예전의 저였다면 이 무슨 시간 낭비냐며 아까워했을 시간이었지요. 혹시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그동안 제게 없었던 거예요. 일을 하거나 일에 대한 공부를 하거나 아이들을 돌보거나 아이들을 위한 빨래나 요리를 하거나. 번아웃에서 벗어나려고 공부처럼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고, 뭐든 하는 저였지요. 


당신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지난번 편지에서 당신에게 삶에 여백을 두라고 했던 저의 말을 기억하시나요. 지금 그 여백을 두고 계신가요.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 당장 10여 분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마시길 바라봅니다. 밖으로 나가 오늘 날씨가 어떤지를 느껴보세요. 어떤 걱정도 염려도 없는 10분 동안 나의 마음이 어떤 색인지 바라만 보세요. 


오늘 저의 마음은 가을 하늘처럼 맑은 파란색이네요.

당신의 마음이 밝길 바라봅니다. 어둡다면 지금 제가 당신의 마음을 위해 시원한 바람 한 줄기를 보냈다는 사실도 떠올려주세요. 


여전히 당신을 걱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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