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연 Oct 19. 2023

온전히 쉴 수 있을까(2)

번아웃에 시달리다가 3개월을 쉬게 된 사람의 이야기

당신은 무언가를 생산하거나 배우지 않고 오롯이 낭비하는 시간을 보낸 적이 있으신가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저도 그런 시간을 종종 보냈던 것 같아요. 토요일 아침에 느지막이 눈을 떠서는 침대 위를 뒹굴거렸던 순간. 햇살이 눈을 찌를 때까지 누워서 멍하니 창밖의 하늘을 바라봤던 순간. 하릴없이 옷을 주워 입고 동네 카페에 앉아서는 시간을 읽는 듯 바람결을 느꼈던 순간.


사진: Unsplash의Joël de Vriend


아이가 태어나고는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 됐어요. 남은 시간을 농축해서 써야 했어요.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영어 단어를 공부하거나 일에 관련된 래퍼런스를 찾곤 했지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은 사치 그 자체였어요. 일에서도 그랬어요. 빨리 집에 가야 하니 일이 많을 때면 한두 시간 일찍 출근해 일하곤 했지요.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여기곤 했어요. 무슨 일이든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지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어요. 내가 할 수 없음에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았던 무수한 순간들이 제게 병을 가져왔음을요. 일개 대행사 직원이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을 고객사 요청으로 진행하고. 어찌 보면 제 업무가 아니라 할 수가 없는 일이었는데도 질타를 받으며 왜 잘 해내지 못했나 자책했던 순간들. 



사진: Unsplash의Valerie Blanchett


번아웃은 일이 많아서 올 수도 있지만 제 번아웃은 더 어둡고 깊었어요. 거기에는 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서 해내려고 애를 썼던 시간이, 깊은 어둠으로  존재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확히 말하자면 생산적인 일은 하지 않는 하루 4시간 동안. 저는 제 안의 무력감을 몰아내기 위해 스스로 무력한 사람이 되기로 했어요. 무얼 해내지 않아도 돼. 약해져도 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넌 괜찮은 사람이야. 잠을 더 자도, 무얼 만들지 못해도, 그저 걷거나 멍 때리기만 한대도. 너는 쓸모 있는 사람이야. 


그렇게 제가 읊조리는 시간이 되었어요. 

짧다면 짧은 3개월의 휴직 속에서 저는 조금은 나아진 사람이 되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번아웃을 앓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다만 '조금 나아진, 번아웃을 앓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지요.


아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었다면 온전히 회복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기에는 생계가, 일터가, 사람들이 자꾸 눈에 걸렸네요.



사진: Unsplash의Renel Wackett


당신의 요즘은 어떤가요. 당신에게도 제가 스스로 했던 말을 전하고  싶어요. 


무얼 해내지 않아도 됩니다.

약해져도 돼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에요.


제가 오늘 당신에게 보내는 이 작은 격려가 당신의 깊은 어둠을 조금이나마 몰아내길, 기원해 봅니다.

이전 07화 온전히 쉴 수 있을까(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