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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Oct 19. 2023

열심히는 개나 줘버리고

이제부터 멀어져야 하는 단어들

오늘 편지는 고백하면서 시작해야겠어요.


사진: Unsplash의Kate Macate


저는 당신이 누군지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은 매순간 열심히 사는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하는 사람이지요. 누군가 당신에게 뭘 맡기면 당신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쏟아서 그 일을 해내는 사람이고요. 매일 성장하는 자신을 꿈꾸며 오늘도 뭔가를 배우고 익히는 사람이에요. 당신이 가진 재능과 열정을 쏟아내서 지금 시간을 채우고 있을 테지요.


모든 순간마다 당신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진: Unsplash의Aron Visuals


어쩌면 열심히 사는 당신이기에 번아웃이, 아픔이 찾아온 것일지도 몰라요. 조금 느긋하고 밍밍하게 살았더라면 당신의 마음은 지금보다 덜 아팠을 거예요.  당신 기준에 대충하는 것도 어쩌면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열정이었을 테지요.


당신에게 오늘은 금지해야 할 목록을 건네고자 합니다.


사진: Unsplash의Kelly Sikkema


먼저, 열심히입니다. 당신이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생활하는 사람이란 걸 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당분간 열심히라는 단어와는 멀찍이 떨어져 걸어보세요. 잘 안 될 테지만 당신은 할 수 있을 거예요.


수영을 배운 적이 있나요. 아니면 물에서 몸을 둥실 띄워본 적은요.


힘을 잔뜩 주고 퍼덕거린다고 몸이 뜨진 않아요. 힘을 빼고 가만히 머무를 때 우리 몸은 물 위에 떠오르지요. 저는 삶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애쓴다고 모든 일이 풀렸다면 아마 번아웃을 맞아들인 우리들이 가장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이어야 할 거예요. 열심히 달려온 사람들이니까요.

삶은 참 모호하고 알 수 없어서, 어떨 때는 운에 모든 게 좌지우지되는 것 같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절망하거나 쉽사리 무력해지진 마세요.


우린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을 뿐이니까요. 우리가 잘못된 곳에 다다르게 된다해도 거기에 우리 잘못은 없는 거예요. 그러니 쉽게 좌절하거나 스스로를 탓하지 마세요. 파도를 이기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저 파도가 이끄는 데로 가되, 그곳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어디로 향할지, 돛을 펼지 말지를 우리 나름대로 정하면 될뿐이에요.



사진: Unsplash의Silas Baisch


언제나 모든 것에 열심히 하기보다 반 정도만 열심히 해보세요.

힘을 빼고 물에 뜨던 느낌을 떠올리면서 생경하게 나를 바라보세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보세요.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안녕, 하고 인사하고 돌아서서 걸어오세요. 할 수 없는 일에 당신이 마음을 쓸 필요는 없어요. 할 수 있는 일에만 마음을 써도 고비마다 파도가 우리를 다른 데로 이끌지 모르니까요.



사진: Unsplash의reza shayestehpour


그 다음으로 내 탓이라는 말을 버리세요. 저는 알고 있어요. 당신은 일이 잘못되거나 무언가 잘 안 풀릴 때 가장 먼저 자신을 탓하는 사람이라는 걸요. 물론, 거기에 당신 잘못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백퍼센트 당신 잘못은 아니에요. 당신의 잘못이 있다면 다른 이의 잘못이, 운이, 우연이 있을 테지요. 어쩌면 당신 잘못은 아주 미약하고 다른 것들이 대다수일지도 모릅니다.


스스로를 탓하는 시간을 지우세요. 지울 수 없다면 조금만 가지세요. 당신 스스로 번아웃이 없어졌다는 판단이 들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당신 스스로를 탓하는 데서 병이 더 깊어진 것이니까요. 제가 앞에서 말씀드렸죠. 잘못된 곳에 다다르게 된다고 해도 거기에 우리 잘못은 없다고요. 우린 파도에 휩쓸리며 사는 인생일 뿐이에요. 오늘 내 하루에 비가 올지 안 올지 예측할 수 없는 삶이에요. 그러니 비가 오면 '비가 오는구나' 그러고 걸어가세요. 비에 좀 젖더라도 집에 가서 따뜻한 물에 씻고 빨래를 돌리면 될 일이에요. 왜 내가 우산을 챙기지 않았을까 하고 자책하지 마세요. 내리는 비에 당신의 잘못은 없는 거예요.


정 그렇게 하기 어렵다면, 우산을 챙기지 않았을까가 아니라 우산을 챙기면 좋았을 텐데 정도로 안타까워만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충분한 일들이에요.


사진: Unsplash의Saffu


차라리 다음에 이런 아침이면 우산을 챙겨야지 라고 해도 괜찮아요. 내 탓과 무분멸한 반성보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도록 그 일을 돌아보세요.


두 가지만 하지 않아도 당신의 아픔은 아마 덜해질 거예요.

저도 두 가지를 덜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어요. 잘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괜찮아요. 우리는 지금 충분히 노력하는 중이니까요. 그러니 당신도 괜찮아질 거예요.


저를 믿어주세요.

당신은 곧 괜찮아질 거고, 삶이 어느 아늑하고 포근한 해변으로 당신을 데려다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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