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말하는 엔터테인먼트 vs 들어주는 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은 하루 중 잠자는 시간만큼이나 오랜 시간 말하고 또 듣는다. 심지어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꿈을 꾼다. 왜일까. 도대체 왜 사람들은 인생의 그렇게도 많은 부분을 이야기들 속에서 보내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이야기가 의식주같은 어쩔 수 없는 우리 삶의 도구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야기가 하루 깨어있는 동안 수행하는 일, 놀이, 식사, 운동 등 모든 활동에 필적할만한 비중을 가지는 일상 활동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의 활력소가 되는 이야기에 열광하고 환호를 보낸다.
세일즈맨은 그런 부정할 수 없는 삶의 도구를 무기로 삼아 고객들을 만나고, 그들과 끊임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우리는 보다 나은 화술을 익히기 위해 교육을 받고, 시선을 끌만한 이야기를 보유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듣기 싫은 딱딱한 상품소개를 기대했던 고객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할 통쾌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이야기를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하지만 우리 세일즈맨은 그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오판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이나 만족스러운 결말에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는 고객을 압도하는 빛나는 화술로 재미난 이야기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이 고객을 위한 미덕이고, 진정한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객들은 영화나 연극을 보러온 것이 아니다. 대화는 영화나 연극과는 철저하게 다른 이야기 형식으로 한쪽은 듣고 한쪽은 말하고 하는 일방적인 상태에서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과연 고객을 위한 엔터테인먼트란 무엇인가. 과연 고객이 원하는 진정한 엔터테인먼트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말하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들어주는 엔터테인먼트’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대화에 있어서 이야기를 듣기보다 말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 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로서 이야기 속에 나오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따라서 고객을 위한 엔터테인먼트는 그들을 대화의 주체나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고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듣기만 하면 된다. 고객이 말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들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게 되고, 그만큼 더 세련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야기하는 데 흥이 나 있던 그들이 이번에는 당신이 이야기할 차례라고 바턴을 넘기면, 우리는 비로소 빛나는 화술과 재미난 이야기를 가지고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에 맞장구만 쳐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