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낙하산 소개 vs 스카우트 소개

by 김태상

가끔은 소개자의 영향력이 너무도 강력해서 오히려 부담될 때가 있다. 사업 관계에서 갑이 을을 소개해주거나 직속 상관이 부하직원을 소개해 줄 때가 그런 경우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낙하산 소개였다. 아무리 소개자가 사심 없이 그들을 소개해주었다고 해도 낙하산은 역시 낙하산이었다. 소개를 받아 그들을 찾아가면, 보통 엄청난 환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오시는 데 불편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제가 찾아 뵈어야 하는데. 사무실이 좀 누추해서 면목이 없습니다. 그저 구멍가게 수준이죠. 그래도 그분이 많이 도와주셔서 이렇게라도 먹고 삽니다. 그분이 하라면 무조건해야죠. 불량식품이라도 사야죠. 그분이 어련히 알아서 좋으신 분 소개해주셨겠습니까? 설명도 필요없습니다. 제가 뭘 해야 하는지 그것만 간략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 참, 차 대접하는 것도 깜박 잊었네.”

신나는 일이었다. 세일즈맨이 어디 가서 이런 황송한 대접을 받아보겠는가. 판매는 언제나 떼 놓은 당상이었다. 펜을 들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명함보다 먼저 계약서를 내밀어도 흉이 아니었다. 더 심한 경우에는, 그래도 설명을 자세히 들어보고 결정하라는 내 말에 그분과 자신은 그런 관계가 아니니 대충하는 것이 자신을 도와주는 일이라며 오히려 엄포 아닌 엄포를 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에 어디 그렇게 쉬운 경우가 있을까. 간혹 소개자를 존경이나 은혜의 대상으로 생각해서 진심으로 내게 융숭한 대접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 융숭한 대접 밑에 말할 수 없는 불쾌감 같은 묘한 복선을 깔고 있었다.


나는 판매에 앞서 그 복선의 의미를 파악해야 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내게 이같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찾아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나는 생각했다. ‘아이, 정말, 이러지도 못하겠고 저러지도 못하겠고, 진짜 미치겠네. 그 양반 또 뭘 사라고 사람을 보낸다는 거야, 필요도 없는데. 말이 좋아 그냥 한번 만나보라는 거지 나중에 무슨 봉변을 당할려고 안 사. 어떻게 안 사고 버티냐고. 에이, 정말, 제일 싼 거라도 하나 해야겠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네.’


나는 또 생각했다. ‘당신, 지금 나한테 부탁 하나 하는 거지? 알았어. 기꺼이 그 부탁 들어줄게. 당신 친구가 찾아오면 극진히 모시고 하나 살게. 하지만 당신도 알고 있겠지? 관계란 언제나 기브 앤드 테이크라는 것을. 기억해두겠어. 당신도 기억해두라고. 부탁 하나. 부탁 둘...’


그래서 강력한 낙하산 소개는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소개자들도 조심스럽기는 내 생각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서로의 관계가 좋지 않게 꼬일 수가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의 중간자로서 ‘그분과 자신은 그런 관계가 아니니’ 하는 문맥에서 현명한 판단을 해야 했다.


일단 나는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이 소개자를 존경과 은혜의 대상으로 생각하든 불쾌감을 제공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든 기브 앤드 테이크의 대상으로 생각하든,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낙하산 소개라면 어떤 상황이라도 기분이 나쁠 거라는, 나 같아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거라는 전제를 깔고 그들을 만났다. 이런 경우는 소개자의 얼굴을 내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했다.


나는 낙하산 소개에 대해서 나만의 철칙을 세웠다. ‘그 사람을 내 친구로 만들기 전에는 절대 계약하지 않겠다.’ 바로 이것이었다. ‘소개자와 그들의 그런 관계’를 ‘나와 그들의 그런 관계’로 만드는 것이 내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여느 때보다 겸손하고 진지하게 상담을 이끌었다. 당장 필요 없는 사람이나 충분히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 권하지 않았다. 여느 때보다 완고하고 강력하게 상담을 이끌었다. 상담에 동참하지 않고 대충 제일 싼 걸로 하나 하려는 사람에게는 모질게 굴었다. 여느 때보다 소개자의 영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소개자 대신 나를 집어넣기 위해 내 능력과 지식을 총동원했다. 여느 때보다 열린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소개자 쪽으로 열린 마음을 내 쪽으로 열게 하기 위해 내 진심을 보이고자 했다.


이 모든 행위는 내가 하고 있는 영업의 권위를 실추시키지 않으려는 무언의 노력이었다. 그리하여 ‘낙하산 소개’라는 불명예를 벗고 ‘스카우트 소개’라는 새로운 명예를 얻고자 한 것이었다.


한번은 둘째가라면 서럽다고 할 정도로 규모가 큰 유통업체에서 근무하는 고향 친구가 협력업체 사장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 업체는 충청도에 있는 중소 제조업체로서 친구 회사에 물건을 납품하고 있었다. 내 친구가 그 업체 담당자였다. 나는 강력한 낙하산 소개를 받은 것이었다. 나는 그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예상대로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었다.


“그분한테 말씀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여기 시골까지 내려오실 필요는 없고요, 제가 다음 주 수요일 서울에 올라가니 그때 만나지요.”

우리는 강남에 있는 호텔 커피숍에서 처음 만났다. 정장 차림을 한 그는 시골 중소업체의 사장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옆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강남의 비즈니스맨들보다 세련되게 보였다. 첫인상이 좋았다.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나는 참 다행스러운 점을 발견했다. 내가 생각했던 만큼 강력한 소개가 아니었다. 그는 회사 제품의 전량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었다. 내수시장은 친구 회사가 유일했다. 수작업으로 제품을 만드는 회사여서 언제나 물량이 부족했다. 제품의 질이 좋아 친구 회사에서 먼저 납품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번 소개를 낙하산 소개 쪽으로 생각했다. 그 이유는,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영락없이 낙하산 소개에서 나타나는 유형을 띄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 설명을 자세히 들으려 하지 않았고, 그저 적당한 걸로 선택해서 얼굴 치레만을 하려고 했다.


나는 완고하고 강력하게 상담을 이끌었다. 우리가 만나는 첫날에는 아무런 결론을 내지 않았다. 그 후 우리는 두 번을 더 만났고, 그는 내 제안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였다. 그가 최종적으로 서명한 계약은 처음 그가 생각했던 것 보다 다섯 배,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세 배가 더 큰 것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체결한 계약 중 가장 큰 것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결국 내 고객이 되지 못했다. 그는 건강검진을 통과하지 못했다. 많은 경우 그랬다. 고객들은 자신의 건강을 자신하고 있었지만 그를 포함한 많은 고객이 자신도 모르게 병을 키우고 있었다.


그날로부터 그에 대한 내 영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충청도에 있는 그의 회사를 직접 찾아가 사업에 매진하느라 그동안 돌보지 못한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는 그를 위로했다. 그리고 그가 하는 사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동안 그는 내 형이 되어있었다.

“형님, 회사 홈페이지가 너무 후지지 않아요? 이제 내수시장도 점차 넓혀갈 계획이라면서요? 그런데 지금 홈페이지는 형 건강만큼이나 후지거든요. 그러니까 이참에 내가 홈페이지 제작을 맡고, 형수님이 형님 건강 챙기고, 그렇게 해서 물갈이를 싹 하는 거예요. 다음 주말까지 기획서 보낼게요. 검토해 보세요. 정말, 형님은 평생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홈페이지는 깔끔하게 정돈되었다. 그후로도 그는 툭하면 전화해서 글 좀 써달라고 떼를 썼다. 새해 벽두 시무식 연설문을 써 달라고 졸라댔다. 나는 그때마다 시골 사장 티를 낸다며 그를 놀려대곤 했다. 사는 재미가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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