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살면서 가끔은 전에 없이 엉뚱한 생각을 할 때가 있나 보다. 나는 X시장을 거쳐 Y시장과 Z시장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시간적으로는 입사 2년 차를 맞고 있었다. 사람들이 바쁘다고 말하는 것은 죄다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던 나도 주위 사람들에게 그 말을 자주 할 정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근거도, 아무 이유도 없이 내 머릿속에서 그야말로 나답지 않은 생각 하나가 불쑥 생겨 나왔다. ‘나는 서른여섯이 다 되도록 내 몸 하나 치다꺼리하는데 그리도 힘들어했나. 과연 나는 남을 위해서 살아본 적이 있는가.’
처음 해본 생각이었고, 늦은 생각이었다. 늦은 만큼 창피한 생각이었다. 돌이켜 내 짧지 않은 생을 반추해 보았다. 엄살로 점철된 삶이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던 삶이었다. 살면 살수록 미안한 사람들만 자꾸 늘어나던 삶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떠오른 좋은 생각은 좋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생각이 생각만 키우고 있었다. 늘 그랬다. 어떤 생각이든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나마 늦게라도 실행에 옮길 수 있다면 그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보통은 머릿속에서만 뱅뱅 맴돌다가 은근슬쩍 사라지기 일쑤였다.
회사 홈페이지에 넬슨 만델라의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랑의 집짓기(Habitat)'가 열린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나는 그런 행사가 있다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한동안 컴퓨터를 뚫어지듯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민했다. 생각은 무조건 지원하자 하는 쪽이었지만, 내가 처한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행사 기간은 일주일 정도였지만, 너무 먼 곳이라 가고 오고 하는 시간을 따져보면 열흘 이상은 족히 필요했다. 더욱이 돌아와서 영업이 다시 제자리를 잡기까지는 부지런을 떨어야 한 달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긴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매니저와 지점장의 허락이 필요했다. 아무리 영업조직이 일반회사에서는 엄두도 못 낼 시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지만, 조직은 역시 조직이고, 조직을 이끌고 있는 그들의 허락은 기본이었다.
나는 일단 내 자신을 점검해보았다. 이번에도 늘 그랬듯이 생각만 키우다가 말 것 같았다. 여유가 생기면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평생 가도 그 여유가 올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나는 지원하기로 결심하고, 내 결심을 매니저와 상의했다. 그는 약간 놀란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가 지금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영업은 할 때 해야지 공백을 두면 다시 원위치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누누이 했던 그로서는 쉽게 허락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나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있는 온갖 말을 다 갖다 붙였다. 듣고만 있던 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나도 가고 싶다. 내가 간다면 팀원들이 뭐라 하겠지. 그런데 나는 네가 조금은 걱정이 된다. 너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비우는 것 같아서. 그렇지 않아도 원래 영업 2년 차가 제일 힘들 때거든. 오죽하면 ‘2년 차 슬럼프’라는 말이 생겨났겠어.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요즘 지점 분위기가 너무 안 좋잖아. 곧 본사에서 인사위원회가 열려. 이번에는 본사에서 강한 조치를 할 것 같아 걱정이다. 여하튼 그렇게 결심했다니 내가 지점장님한테 잘 말씀드려 볼께. 허락이 안 떨어지더라도 실망하지 마라. 가게 되면, 내 몫까지 잘하고 오고.”
그랬다. 그 당시 지점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한 영업사원이 컴플라이언스 규칙을 위반하면서 영업을 하다가 들통이 났다. 회사는 부정한 방법으로 영업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엄중했다. 그 덕에 본인은 물론 담당 매니저와 지점장이 함께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우리 지점 입장에서는 처음 발생한 일이 아니어서 보다 가중된 처벌이 예상되었다. 지점장은 수시로 매니저 회의를 소집했다. 주요 안건은 컴플라이언스 교육을 강화하라는 것과 지점이 당면한 문제로 인해 떨어진 영업사원의 사기를 높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우리 지점의 생산성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지점장이 허락할까. 사실 무리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지점장은 흔쾌히 내 결심을 받아주었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야. 자네가 있다고 열리는 인사위원회를 막을 수 있나. 잘 다녀오게. 좋은 일 많이 하고, 좋은 것 많이 보고 와서 지점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으라고.”
그는 가기 전날 내게 점심을 사주었다. 식사하면서 그와 나는 가벼운 내용만을 골라 이야기를 나눴다. 영업에 관해서나 지점에 관해서는 일절 얘기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서로 잘 모르는 아프리카 땅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잘 모르는 얘기를 하다 보니 자꾸만 대화가 끊기고 겉돌았다. 나는 그가 걱정이었다.
결과는 내 예상을 훨씬 넘어있었다. 내가 아프리카에 있는 사이 인사위원회는 열렸고, 회사는 해당 영업사원에게 일시 영업 정지를, 매니저에게는 자격 취소를, 지점장에게는 해외 발령이라는 엄벌을 내렸다. 회사의 조치에 따라 모든 일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새 지점장이 오고, 여섯 개였던 팀이 다섯 개로 축소되었으며, 팀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영업사원 몇 명은 다른 지점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우리는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생각은 전염됐고, 나쁜 생각은 더 빨리 전염됐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꼬집어 얘기할 수 없었기에 그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영업이란 혼자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점에, 혹은 팀에 어떤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더라도 내 일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밖에 나가서 혼자 영업하는데 안에서 지지든 볶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의 생산성은 한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다 떨어지고 있었다. 조직의 에너지가 고객들에게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떨어지는 생산성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생산성이 떨어져도 그것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안타깝게도, 너무도 안타깝게도 첫 번째 위대한 낙오자가 그러했듯이 두 번째 위대한 낙오자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의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쓸쓸히 사라져갔다. 바로 담당 매니저와의 마찰이 그것이었다.
매니저들은 악화되어 가는 분위기를 하루라도 빨리 진정시키기 위해 강수를 두기 시작했다. 더 이상 개인적 사정은 허용되지 않았다. 교육시간을 늘렸고, 떨어지는 실적을 추궁했다. 우습지만 지점 내 잡담 금지를 새로운 원칙으로 도입했다. 더욱 저돌적인 매니저는 부탁을 지시나 명령처럼 내렸다. 공멸을 막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겉으로 보기에 옳았다.
영업사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직접적인 인사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매니저는 공격 대상으로서 언제나 만만했다. 회사로부터 위촉된 개인사업자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설득력 있는 의사소통을 원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기를 바랐다.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 달라는 그들의 요구는 겉으로 보기에 옳았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옳지 않았다. 추락하는 실적과 조직원의 퇴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관계란 교육받은 정신의 활동이 아니라 서로 아끼고 배려하려는 마음의 활동으로 유지되는 것임을 우리는 잠시 잊고 있었다. 같은 목표와 같은 비전을 가지고 모인 우리는 더 이상 좋은 파트너가 아니라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만을 주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번 다치면 너무 아프고, 너무 오래가는 상처를 마음에 담고 외치는 우리의 열정은 공허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얼마 전 나를 움직였던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과연 나는 남을 위해서 살아본 적이 있는가. 나는, 우리가 제일 먼저 봉사하고 나누어야 할 대상이 저 멀리 아프리카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옆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임을 그 먼 땅에 다녀와서야 비로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