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경 나는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주유소에서 캐시어로 일했다. 주유소는 LA에서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조그만 도시에 위치해 있었는데, 나중에 그곳이 LA폭동의 진원지라는 얘기를 들었다. 거주민의 80퍼센트가 흑인이고, 나머지는 남미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차지했다. 밤새 일을 해도 백인은 한 명 볼까말까 했으며, 백인이 주유소를 찾는 경우는 거의 대부분 길을 잃은 경우였다.
그런 사정을 모르고 그곳에 일자리를 잡은 나는 물론 든든한 방탄유리 안에서 근무했지만 한동안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일을 해야만 했다. 더욱이 주유소가 오고 가는 차들도 많고 대낮같이 밝은 사거리에 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불행하게도 인적이 드문 아주 외진 곳에 있었다.
일자리를 소개해주신 분이 말씀하길 밤 12시가 넘으면 손님도 없고, 주위가 조용하니 독서실처럼 책도 마음대로 볼 수 있고 간간이 잠도 잘 수 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나는 학비도 벌고, 책도 보고, 잠도 잘 수 있으니 일거삼득이라고 좋아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딴판으로 돌아갔다. 12시가 넘어서 날이 밝을 때까지 나는 매일 밤 방탄유리를 사이에 두고 아주 특별한 손님들과 아주 특별한 거래를 해야만 했다. 새벽 1시가 되면 어김없이 그 야밤에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자전거를 탄 홈리스가 방문했다. 그의 방문 목적은 나에게서 공짜로 스낵이나 소다를 얻는 것이었다. 일단 그가 오면 30분 정도는 족히 그와 싸워야만 했다. 누가 이기든 승부가 나야만 우리의 티격태격은 비로소 끝이 났다.
다음은 묘령의 아가씨가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며 주유소를 찾았다. 그녀의 직업은 창녀였다. 50불만 주면 외로운 밤을 달래준다는 달콤한 말로 그녀의 유혹은 시작되었다. 내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고, 주유소 앞마당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필요 없으니 가라고 해도 갈 데가 없다며 버티고서는 그녀의 끈질김은 그야말로 질긴 인연처럼 매일 밤 계속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의 영업장소가 바로 주유소였다. 가끔 주유를 하기 위해 들른 손님들을 유혹해 그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음은 내가 붙인 닉네임이지만 덤 앤 더머 두 녀석이 이틀에 한 번 꼴로 주유소에 들렀다. 어떤 종류의 마약을 복용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분명 심한 마약중독자임엔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마약에 취하면 허기와 졸음과 추위를 동시에 느끼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나란히 유리창에 붙어서 코를 훌쩍거리고, 그 더위에 온몸을 사정없이 떨며 손가락으로 빵과 스낵, 음료수 등을 주문했다. 밤에는 위험해서 스낵코너도 문을 잠근 채 장사를 했다. 밖에서 이렇게 주문을 하면 내가 직접 집어 들고 좁은 드로우어를 통해 손님들에게 건넸다.
그들은 맨정신이 아니어서 서로 이것저것 마구시켰고, 나는 그 녀석들에게 차례대로 한 명씩 주문하라고 매번 고함을 쳐야 했다. 더욱 난처한 일은 그들이 주문한 것을 집어 들고 ‘다음은 또 뭐?’ 하며 그들 쪽으로 돌아서면 그들은 유리창에 붙어서 그새 잠이 들어 있었다. 정말 코믹했다. 나는 유리창을 주먹으로 꽝 때려서 그들을 깨워야만 했다. 이렇게 주문하고 잠들고, 주문하고 잠들고 하는 시간이 보통 1시간 이상 소요되었다.
그리고 하루 한 번꼴로 요란한 사건이 일어났다. 좀 조용하다 싶으면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갱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낡고 육중한 차와 그 뒤를 쫓는 경찰차가 거의 동시에 주유소로 들이닥쳤다. 한 무리의 흑인들이 차에서 나오고 총을 든 경찰들은 그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지원 차량이 두 세대 더 오고 결국엔 그들 모두 경찰에 의해 연행되곤 하였다. 미국에서는 유색인종들이 경찰에 쫓기면 주유소 같은 밝은 곳을 찾았다. 혹시 일어날 수 있는 경찰들의 가혹행위를 우려해서 그랬다.
그 밖에도 꼭 갚을 테니까 외상으로 기름을 좀 넣어달라고 떼를 쓰는 손님, 주유하면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정신이 팔려 주유 펌프를 꽂은 채 내달리는 손님, 주유를 잘해놓고 기름이 안 나온다고 우기는 손님, 캔 음료에 벌레 같은 이물질을 넣어 가지고 와 보상하지 않으면 소송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손님. 그야말로 그 시절 나의 밤은 그들 덕분에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나는 어느새 그들과 친구가 되어 있었다. 걱정할만한 불상사는 다행히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유소 근처에 사는 단골들과는 서로의 이름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는 정도로까지 친해졌다. 일종의 텃세라는 것도 일을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나면서부터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낯설고 두려운 마음도 어느새 옛날얘기가 되었고, 토막잠을 청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나는 가끔 그들에게 외상으로 기름을 넣어주기도 했으며, 공짜로 소다 같은 것을 건네는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단골 중 나와 가장 친분이 있었던 사람은 안드리께라는 이름의 멕시코인이었다. 9년 전에 이곳 미국으로 넘어온 그는 스물네 살이었고, 결혼해서 벌써 아이를 셋이나 두고 있었다. 그의 나이 열여덟에 첫아이를 얻었고, 막내는 태어난 지가 채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 일찍 자식을 두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낙태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종교 때문에 그랬고, 미국 정부로부터 만만치 않은 금액의 양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어서 그랬다. 하지만 이보다는 불법체류 신분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자식들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부모는 비록 불법체류 신분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당당히 미국 시민이었다. 그런 자식들이 빨리 커서 성인이 되면, 부모를 정식 초청할 수 있었다.
그는 불법체류라는 신분 때문에 변변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냥 놀다가 일거리가 생기면 공사장이나 과수원 같은 곳에서 일일 잡역으로 일을 했다. 그래도 그는 항상 웃고 다녔다. 그는 주유소 뒤편 주택가에 살고 있어서 밤늦게 심심하거나 담배 생각이 나면 걸어서 주유소에 놀러 오곤 했다. 나는 그가 오면 으레 그에게 한두 개비의 담배를 건넸다.
가끔 그는 내가 출근하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리고 내가 차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첫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온 가정통지문이나 서류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장남은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었고,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자랑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헤이, 이지 머니 주니어(easy-money Junior)! 이제 오냐? 네가 오기를 한참이나 기다렸다고. 무슨 얘긴지 이것 좀 읽어봐.”
그는 언제나 나를 이지 머니 주니어라고 불렀다. 그 말은 돈을 쉽게 번다는 뜻이었다. 자기들은 뙤약볕 아래서 힘들게 돈을 버는데 나는 주유소 부스 안에서 그저 돈만 받고 기름만 넣어주면 되니까 얼마나 편하게 돈을 버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주유소 사장의 아들이나 친척쯤으로 생각해서 주니어라는 말을 뒤에다 붙였다.
그는 나보다 영어로 말은 더 잘했지만, 읽고 쓰는 것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들이 학교에서 받아오는 통지문을 매번 나에게 가져 왔다.
“부모와 함께 하는 숙제라... 이봐 아미고, 잘 들어. 일단은 네 아들을 데리고 부엌으로 가. 그리고 식탁에 앉아서 부엌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네 아들에게 물어봐. 이건 뭐냐, 저건 뭐냐 하는 식으로. 이를테면 냉장고, 선반, 접시 같은 거 말이야. 그러니까 네 아들에게 부엌에 있는 물건들의 이름을 가르치라는 거야. 알겠지?”
그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쏜살같이 집으로 뛰어갔다. 아들이 잠들기 전에 그 숙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보다 일곱 살이나 어린, 아이의 아버지가 무척이나 귀여웠다.
어느 날, 그는 내가 처음 보는 친구 한 명을 주유소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에게 요기가 될만한 빵이나 과자를 사주었다. 먹을 것을 받아든 친구는 닥치는 대로 그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누구냐고 물었다.
“내 고향 친구야. 오늘 멕시코에서 왔어. 보름 굶었대. 국경수비대가 경비를 얼마나 삼엄하게 하던지 넘어오기가 쉽지 않았나 봐. 원래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루트가 있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그쪽으로 못 오고, 사막으로 돌아서 왔대. 일곱 명이 같이 오다가 사막에서 두 명은 죽었대. 갈증과 허기로 탈진했나 봐.”
그 친구가 원기를 회복하기까지는 한 달 이상이 걸렸다. 그는 그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가끔 안드리께와 같이 주유소에 와서 먹을 것을 사 갔다. 조금씩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는 건강을 되찾은 후 안드리께를 따라 다니며 일을 배웠다. 돈을 벌고부터 계산은 안드리께 대신 그가 주로 했다. 말수도 점차 늘었다. 그도 나를 안드리께처럼 이지 머니 주니어라고 불렀다. 나는 그가 오면 항상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사선을 넘어올 때 품었던 그 비장한 각오를 금방 잊어버렸다. 먼저 그는 머리에 노랗게 염색을 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귀를 뚫어 예쁜 귀걸이를 달았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팔에 독수리 문신을 새겨 넣었다.
그는 수중에 돈이 있는 한 일을 하러 나가지 않았다. 하루가 멀게 파티장을 쫓아 다녔다. 파티에 가는 길에 주유소를 들러 먹을 것 대신 콘돔을 샀다.
“무초 세뇨리타(예쁜 여자애들이 많아)! 너도 같이 갈래?”
그는 이 말을 남기고 자랑스럽게 길을 나섰다. 그는 행복해 보였지만, 나는 기가 막혔다. 그는 그 짧은 시간에 미국인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들었던 남미인들의 타고난 낙천적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사선을 넘어올 때 품었던 그 비장함을 금방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 어쩌면 그에겐 처음부터 미국 가서 보란 듯 성공 한번 해보겠다는 각오가 없었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