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몇 년 몇 월 몇 일 날 죽을까. 꽃피는 춘삼월일까, 아니면 낙엽이 마저 떨어지는 늦은 가을일까.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활기찬 월요일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나들이를 떠나는 한가한 일요일일까. 내가 태어난 아침 시간일까, 아니면 정신없이 노는 아이를 씩씩거리며 불러 세우는 엄마의 고함소리가 있어 더 정겨운 저녁 시간일까.
나는 그날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금방 그날이 찾아오리라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날이 찾아올 때까지 나는 무엇이 신의 뜻인지도 모른 채 짧은 시간 생존할 것이다. 주유소 아주머니처럼 열심히 일할 것이고, 멕시코 친구 녀석처럼 파티장을 찾아 쏘다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처럼 살지 않을 것이고, 그 녀석처럼도 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 때문에 울고 웃고 할 것이다. 아니, 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좌절하고, 희망을 가질 것이다.
나는 결심했다. 죽는 그 날까지 사람들과 함께 있을 것이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죽을 것이다. 나는 죽는 그 날, 단 하루만 아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전날까지 나는 일을 할 것이다. 그 일은 분명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하는 창조적 행위인 세일즈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세일즈의 전문가가 되기보다 삶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 영업에 치여, 일에 치여 죽고 싶지는 않다. 사는 게 어렵다고 길길이 날뛰면서도 일은 즐겁게 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영업은, 일은 내가 생각하는 최고로 좋은 노후대책이 될 수 없기에.
나는 이제 ‘일하듯 놀고, 노는듯 일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 세상 속으로, 사람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갈 것이다. 세상 밖에는, 사람 없이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