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턴가 우리가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만 생각하고, 움직이고, 관계 맺고, 살아가려고 한다. 그 밖의 세계에는 관심도 없다. 잘 모르니까 혹은 귀찮으니까 관심조차 가지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마다 세계를 이해하는 크기나 폭도 모두 다르다. 누구는 보다 넓고, 누구는 보다 좁다. 하지만 이해하는 세계가 넓고 좁고 하는 규모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이해한답시고 생각하는 세계가 온통 오해와 편견과 선입견으로 가득하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회사는 지긋지긋한 공간, 고객은 두렵고 짜증나는 존재, 노동은 어쩔 수 없이 하는 행위. 그래서 어쩌면 아이처럼 보다 좁은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행복한지도 모른다. 이해하는 세계가 넓을수록 오해와 편견과 선입견이 더 많을 테니까 말이다.
왜 이런 얘기를 꺼내느냐고? 바로 오해와 편견과 선입견이 우리가 살면서 그토록 경계해 마지않는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이기 때문에 그렇다. 신명 나게 살고 싶은 우리의 소망을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원흉이기 때문에 그렇다.
한번 생각해 보자. 아이들은 자기들이 이해하는 세계와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 이 두 개의 분명한 세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기가 이해하는 세계를 오해나 편견, 선입견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대로 순수하게 그 세계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자기가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해버리는 우리 어른들과는 달리 끔찍이 좋아하고 궁금해 한다. 심하게는 자기가 이해하는 세계보다 자기가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하루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 세계는 호기심에서부터 출발한 동경의 세계다. 언제부턴가 우리 어른들이 잃어버린 세계다. 아이들은 그 동경의 세계에서 매우 신선한 삶의 활력소를 얻어낸다. 그 활력소를 가지고 아이들은 자기들이 이해하는 세계를 정화하며 사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스트레스를 날려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조금은 더 편해질 수 있다. 해답은 벌써 아이들이 주고 있다. 첫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현실이라는 세계에 수없이 널려있는 오해와 편견과 선입견을 조금이라는 버리며 살아야 한다. 둘째, 우리가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아니 언제부턴가 우리가 잊고 살아온 미지의 세계를 아이들처럼 다시 동경하며 살아야 한다. 모든 발상의 전환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야만 우리의 삶이 보다 건전하고 보다 유익한 방향으로 순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