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일요일 회사에 간다. 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놀러 간다. 놀러 가는 것이기에 출근 시간은 당연히 없다. 복장은 야구모자에다 찢어진 청바지, 면티 하나면 족하다. 손에는 무거운 서류 가방 대신 책 한 권이 전부다. 늦은 아침을 먹고, 점심때가 다 돼서야 어기적거리며 집에서 나온다. 어떤 날은 회사로 오는 길에 사우나에도 들른다. 어떤 날은 영화관에도 들른다. 어떤 날은 서점에도 들른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회사에 들른다.
가끔은 성실한 동료 한둘이 회사를 지키기도 하지만 보통은 텅 비어있기 마련이다. 문을 열고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형언할 수조차 없는 묘한 감격에 젖는다. 큰 소리로 ‘짜자잔’ 하며 불을 켠다. 어슴푸레 잠들어 있던 사무실이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화들짝 놀라 깨어난다. 백 평도 넘는 실내가 순식간에 내 수하에 들어온다. 나는 마치 수차례의 실패 끝에 기어코 적을 함락시키고 성을 점령한 장군처럼 큰 행복감에 젖는다. 그런 희열과 함께 한 주 동안 내 속을 그토록 애태우던 회사라는 공간에 나의 끝없는 보복행위는 시작된다.
일단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고 맨발로 사무실에 깔려있는 카페트를 밟는다. 감촉이 너무도 좋다. 그리고 한동안 내가 점령한 사무실을 맨발로 이리저리 걸어 다닌다. 걸어 다니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휘파람을 부른다. 여기저기 걸려있는 회사 사훈이나 미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팀 구호 플래카드를 미술관에 걸려있는 작품 감상하듯 차례차례 돌아가면서 훑어본다. 벽에 걸려있는 실적판에 장난을 쳐본다. 일요일만은 내가 일등이다.
이 책상 저 책상을 돌아다니며 책상 위에 놓여있는 동료들의 가족사진을 구경한다. 너무도 예쁜 얼굴들이 내 얼굴에 미소를 만들어낸다. 어떤 동료는 딸만 둘이고, 어떤 동료는 아들만 둘이다. 그들은 어떤 인연으로 만나서 이렇게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까.
돌아다니다가 싫증이 나면 나는 휴게실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 마시며 가져온 책을 읽는다. 어디까지 읽겠다는 목표는 없다. 몇 장을 넘기다가도 졸음이 쏟아지면 나는 이내 내 집 거실에서 하는 것처럼 긴 카우치에 벌러덩 누워 낮잠을 잔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지겨워서 깰 때까지 계속해서 달콤한 낮잠을 즐긴다.
나는 가끔 일요일 회사에 간다. 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놀러 간다. 일주일 내내 내 목을 옥죄였던 회사의 살벌한 공기는 일요일을 맞아 그 기세가 한풀 꺾이어 있다. 숨쉬기가 만만하다. 내친김에 나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허공에다 대고 손칼질을 해댄다. 내 공격에 헐렁한 밀도를 유지하고 있던 공기가 마침내 무너져 내린다. 내일이면 또다시 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나와 내 동료에게 숨쉬기조차 힘든 긴장감을 안길 테지만 일요일만은 유순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일요일 회사의 고요함을 즐긴다. 그 고요함은, 마치 일주일 내내 심한 굉음을 내며 돌아가던 공장의 기계가 일제히 멈추어 섰을 때 느낄 수 있는 평온함이나 안락함을 선사한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일주일 동안 나와 내 동료가 바삐 움직이며 만들어낸 수많은 소리를 느긋하게 떠올려 본다. 마이크를 붙잡고 이른 아침부터 직원들을 독려하던 지점장의 열정 소리, 한 사람씩 불러다 떨어지는 실적을 체크 하던 매니저의 걱정 소리, 전화통을 붙들고 끊임없이 고객들과 대화하던 동료들의 통화 소리.
드디어 회사는 나의 보복행위와 나의 반항 기질에 무릎을 꿇고 완벽한 나만의 공간이 된다.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나만의 서재, 나만의 다락, 나만의 유원지, 나만의 우주가 된다. 우리의 삶을 그토록 억압하는 규정이라는 조건과 규범이라는 절차는 최소한 그날 그곳에는 없다. 더군다나 우리가 그토록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노동의 고단함도 사람과의 부대낌도 그날 그곳에는 없다. 무슨 일이든 꼭 해야 하고,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공간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놀아도 되는 짜릿함은 더할 수 없는 위로이며 보상인 것이다.
나는 가끔 일요일 회사에 간다. 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놀러 간다. 가서 하는 일이라곤 고작 독서를 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노래를 듣거나 인터넷을 즐기거나 하는 정도지만 언제 이렇게 회사에서 내 맘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지낼 수 있을까. 어떻게 구두 대신 맨발 차림으로, 정장 대신 청바지에 면티 차림으로 회사를 휘젓고 다닐 수 있으며 맛있게 낮잠을 잘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일요일 회사에서 어느 날씨 좋은 날, 어느 경치 좋은 유원지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보다도 몇 배 더 즐거운 행복을 만끽한다. 그렇게 나는 일요일 회사에서 오해와 편견과 선입견으로 가득한 내 세계를 조금이나마 정화시킨다. 그렇게 일요일 회사에서 사무실을 나만의 놀이터로 만들어 한 주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모두 토해낸다. 그렇게 사람들이 빨리 벗어나는 게 상책이라며 그토록 혐오해마지않는 공간 속에서 자유롭고 한가한 삶을 영위한다.
나는 회사에서 행하는 그런 의식들이 어느 정도 끝이 나면 마지막으로 조용히 불을 끄고 어두운 실내를 한 바퀴 휘 둘러본다. 그리고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든 공기와 모든 책상과 모든 컴퓨터와 모든 파티션에게 다가오는 한주도 잘 봐달라고 부탁한다. 다가오는 한 주를 어리석은 내가 잘 버틸 수 있게 선심이라도 베풀어달라고 간청을 한다. 퇴근 시간 없이 되는대로 귀가하는 내 마음이 새털처럼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