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나만의 세계가 필요해

by 김태상

나는 틈만 나면 우주에 관한 흥미로운 서적들을 챙겨서 읽고, 우주에 관한 발칙한 상상을 해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우주는 과학자에겐 신비스러운 대상이고, 시인에겐 영감을 제공하는 대상이며, 모든 인간에겐 말할 수 없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세일즈맨인 내가 영업이나 재테크에 도움을 주는 책들보다 생활에는 전연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이런 유의 책들을 선호하는 데는 그럴듯한 나만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주가 내게 선물하는 그 신비스러움과 영감과 경외감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스트레스를 이기는 데 가장 훌륭한 예방이며, 동시에 처방이기에 그렇다.


나는 스트레스 때문에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다. 너무나 긴장한 탓에 가슴이 마구 뛰고, 온몸이 굳고, 귀에서는 심한 소음이 들려 한시도 견딜 수가 없었다. 밤이면 불면증에 시달렸고, 그만큼 식욕도 급격히 떨어졌다. 그때 내 나이는 겨우 스물아홉이었다. 사회에 뛰어든 지 삼 년이 채 되지 않은 시기에 나는 심한 스트레스로 반병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여의도에 있는 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그 병원을 다녔다. 매번 의사와 상담을 하고, 긴장도 검사라는 것을 받았다. 의사는 컴퓨터 앞에 나를 앉히고 내 가슴과 팔에 칩 같은 것을 붙여 컴퓨터와 연결을 했다. 검사기가 작동을 시작하면 컴퓨터 모니터에 그래프로 내 긴장 상태가 그대로 나타났다. 의사는 옆에서 마음을 편하게 가져보라고 이것저것 계속해서 주문을 했다.


하지만 긴장 상태를 알려주는 그래프는 의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떨어지기는커녕 올라가기 일쑤였다. 의사는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환자인 나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거 참 이상하네요. 선생님이 제 환자 중에서 최연소인데 이렇게 상태가 호전이 안돼서야... 보통 중소기업 사장들이나 대기업 간부들이 주요 환자들인데, 그들도 이 검사를 받으면 열이면 열 긴장 상태가 완화되거든요. 피드백이 바로바로 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효과가 즉시 나타나는데 말이에요. 안되겠어요. 신경정신과로 옮겨서 치료를 받는 게 나을 것 같군요.”


나는 가정의학과에서 신경정신과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건강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의사 말대로 한 달 정도 입원을 해서 요양하는 것이 좋겠다며 조심스레 내 의견을 물었다. 밤마다 잠 못 이루고 끙끙대는 자식이 무척이나 안쓰럽게 보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기 싫었다. 노모 앞에서 정신병자가 되어 누워있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이로제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었다. 내 아버지는 막내인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러니까 아버지 나이 서른둘에 청량리 뇌병원에서 육 개월 가까이 누워계셨다. 원인은 업무 스트레스였다. 아버지는 그 당시 대한석탄공사에서 근무하고 계셨고, 주로 하신 업무는 산을 돌아다니며 나무를 관리하고, 탄광 내부의 기둥과 천정을 대는데 필요한 갱목을 회사에 공급하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대단한 워크홀릭이었다. 천성적으로 하루도 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군 제대 후 직업을 얻기 전까지 육 개월 동안 아버지는 한 푼도 받지 않고 자진해서 우체국 집배원으로 일을 하기도 하셨다.


그렇게 일에 파묻혀 사시던 아버지가 힘없이 쓰러진 것은 다름 아닌 태풍과 홍수 때문이었다. 엄청난 비바람이 며칠 동안 계속해서 퍼부어댔다. 그 결과 아버지가 관리하고 있던 산들이 사정없이 무너져 내렸고, 탄광으로 옮기기 위해 베어놓은 나무들은 모두 떠내려갔으며, 베지 않은 나무들도 내 아버지처럼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갔다.


아버지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산을 헤매고 다니셨다. 떠내려가는 회사나무를 한그루라도 더 건져보려고 이산 저산을 들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돌아다니셨다. 아버지는 말도 안 되게 태풍과 홍수라는 천재지변을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셨다.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면서도 아버지는 모두 다 내 책임이라는 말만을 마지막 남은 정신이 가물가물 꺼질 때까지 하고 또 하셨다.


아버지를 살린 사람은 어머니였다, 형과 누이를 친척집에다 맡겨놓고 지극정성으로 아버지를 보살피셨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자신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는 말씀을 하고 또 하셨다. 그런데 어머니는 무슨 팔자가 그리도 사나워 이제는 또 아들 녀석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입원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 방에 누워 있다가 책상 밑에 들어가 있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나는 긴 작대기를 이용해서 그 책을 꺼냈다. 먼지가 뭉치 채 딸려 나왔다. 나는 베란다에 나가 책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책 표지에는 우주의 신비라고 씌어있었다. 그림이 많은 아동서적이었고, 책을 좋아하는 큰 조카 녀석이 이리저리 들고 다니며 보다가 책상 밑으로 걷어찬 것이 분명했다.


나는 크게 할 일도 없고 해서 그 책을 장난삼아 넘겨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책에 금방 빠져버렸다.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그 책을 모두 읽어버렸다. 나도 분명 먼 옛날 초등학생 시절에 이 같은 책을 여러 권 읽었을 리 분명한데 그날은 마치 처음 접해보는 양 너무도 신기하고, 너무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면 눈이 어질어질해지고 머리가 깨질 듯 두통이 심해 한 줄도 제대로 읽지 못하던 내가 그 책을 읽을 동안에는 그런 증상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다음날 나는 서점에 가서 우주에 관한 서적들을 여러 권 구입했다. 그리고 여러 달에 걸쳐 그것들을 꾸준히 읽었다. 읽을수록 흥미가 더 생겼고, 흥미가 붙는 만큼 우주에 관한 내 상상력은 더 멀리에 있는 은하까지 다다랐다. 밤이면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고, 잠자리에 들면 광활한 우주가 머리 가득 펼쳐졌다.


병세는 놀랄 만큼 호전되었다. 더 이상 다른 분야의 책을 읽어도 어지럼증이나 두통 같은 증세는 없었다. 잠자리도 편해지고, 식욕도 예전의 그것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도 나는 우주에 관한 책을 읽고, 인류 역사에 관한 책을 읽으며, 공룡을 비롯한 동물과 식물에 관한 책을 읽는다. 그리고 우주에 관해서, 인류의 기원에 관해서, 공룡에 관해서 상상하고 즐거워한다. 고객에게 거절을 당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그것들을 생각하고, 보증을 잘못 서 채무변제통지서를 받을 때도 그것들을 상상하며, 주위 사람들과 불화를 겪을 때도 그것들을 성경처럼 읽는다.


우리는 살면서 걱정과 근심, 분노와 증오, 과욕과 시샘 같은 좋지 못한 감정들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쩔 수 없는 우리들의 삶이고, 현실이다. 문제는 당면한 걱정거리나 근심거리를 해결했다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물론 잠시 동안은 행복감에 젖을 수 있다. 하지만 걱정과 근심은 또 다른 걱정과 근심을 낳고, 분노와 증오는 또 다른 분노와 증오로 이어지며, 과욕과 시샘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만 가기에 우리는 이내 불행해지고, 겹겹이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에 정신을 잃고 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놈의 스트레스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내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말할 수 있다. 한때 노이로제 환자였지만 지금은 회사에서 슬럼프에 안 빠지기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된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걱정과 근심, 분노와 증오, 과욕과 시샘으로 얼룩진 현실이라는 세계에서 잠시 떠나 있을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를 간직하며 살아야 한다. 그 세계는 우주일 수도 있고, 인류의 기원일 수도 있으며, 공룡의 세계일 수도 있다. 어떤 세계이든 그 세계는 우리에게 신비로움이라는 희열과 영감이라는 지혜와 경외감이라는 겸손을 제공한다. 여행이 필요한 이유도 그러한 매우 좋은 감정을 우리에게 선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신선한 삶의 활력소를 가지고 현실을 정화하며 살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현실 세계에 집착하기보다 한없는 여유를 선사하는 그 세계에 들러붙어 한 번 살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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