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토와 백자 그리고 청자
중국인들이 최고의 경도(硬度)를 가지면서도 그 어떤 수분과 습기로부터도 차(茶)를 지켜내는 자기(瓷器 porcelain)를 만들 수 있는 흙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안 건 북제((北齊, 550년 ~ 577년) 말기였다. 고령진(Gaoling, Beijing 高岭镇)에서 캐낸 유백색의 흙으로 소성(塑性) 한 후 섭씨 1400도에 가까운 열을 내는 그저 단순한 산화염(酸化焰)으로만 구운 자기(瓷器)였다. 청자를 소성(塑成)하는 규조토(SiO2)는 장석질(長石質)을 많이 함유한 유약(釉藥)을 두껍게 시유(施釉) 해도 가마 온도가 1350도가 넘어가면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허물어지는 흙이었다. 그렇기에 청자는 반드시 어느 순간엔 공기가 가마에 들어가는 걸 모두 차단해 가마의 불꽃을 환원염(還元焰)으로 만든 후, 가마 내 온도를 통제하면서 구워내야 했기에 땔감과 노동이 많이 들어가는 한마디로 생산비가 높은 제품이었다.
가마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유입을 차단하면 타오르는 화염은 계속 타기 위해 주변의 산소와 필사적으로 결합하는데 이때 그릇을 빚은 태토(胎土) 안에 철과 결합되어 있는 산소(산화철(Fe2O3) 마저도 끌어내 연소하게 된다. 이렇게 이미 태토 안에 철과 결합되어 있던 산소가 연소되어 이산화탄소(CO2)로 분리되면 태토 안에 홀로 남게 된 철(FeO)은 산소를 품어 녹이 슨 적색이 아니라 녹색, 적갈색, 흑색 등의 색깔을 나타낸다. 이런 변화는 장석질(알루미나)이 함유된 유약이 유리질(琉璃質)로 변하면서 환원염의 정도에 따라 태토 안에 남아있는 철의 양이 제각각이어서 색깔도 그에 따라 제각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원하는 빛깔을 얻으려면 그저 하늘에 비는 수밖에 없는 저효율 고비용 생산품이었다. 그런데다 낙타와 나귀, 말들의 등에 올려 차(茶)를 나르기에는 너무 적은 양만을 담는, 가성비가 너무 낮아 쓰기가 어려운 운송용기였다. 그런데 고령토(高嶺土)로 소성한 자기는 1400도까지 올라가는 산화염으로만 구워도 허물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경도가 더 좋은 자기로 가마에서 나와 주었다. 유약도 평범한 회유(灰釉)를 사용해도 하얀색 빛깔로 안과 밖이 균질하게 유리질화 된 자기로 가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백자였다.
실크 로드와 초원로를 장악한 소그드 상방과 진상방 연합체 상인들에겐 경제성이 없어 배척된 자기(瓷器)가 그러나 청자가 아닌 백자로 마린 루트(해양 무역로)에 투입된다면 소그드상과 진상에겐 코끼리가 차(茶)들을 실어 나르는 것과 같은 악마의 경쟁력을 가질 발명품이었다. 수(隋) 양제(煬帝)가 백자 특유의 기능성에 주목해 해양 운송으로 무역의 중심을 옮기다가 나라를 잃어버렸기에 당나라 희종(僖宗)은 안사의 난 진압 이후 다시 공물로 진상된 다기(茶器) 백자 세 점을 법문사(法門寺) 지하궁전에 넣고 873년 폐쇄를 명했다. 그 후 그곳은 1981년 폭풍으로 법문사 탑이 무너져 보수공사에 들어갈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비밀로 역사에서 사라져 있어야만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후진(後晉)의 석당경이 고령토(高嶺土)가 묻혀있는 고령진(高嶺鎭)이 포함된 연운(燕雲) 16주를 거란인 야율아보기에게 넘긴 이후 후세 중국인들이 그토록 연운 16주를 되찾으려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석당경이 알지 못했던 건 고령진에서 백자를 만들 수 있는 고령토를 캐낸 차(茶) 상인들이 철저히 비밀에 부친 까닭이었다. 후일 아무것도 모르는 여진인들을 끌어들여 연운 16주를 수복하려던 북송의 실질적 마지막 황제 휘종(徽宗)이 그들을 고북구진(古北口鎭) 장성 바깥까지만 진군하도록 제한한 것도 그 남단에 바싹 붙어있는 고령진(高嶺鎭)때문이었다. 1400도의 고온에도 성형된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는 소성(塑性)과 두드리면 쇳소리를 낼 정도로 높은 경도(硬度)를 가져 쉽게 깨지지 않는 항아리를 구워낼 수 있는 흙, 특별한 유약(釉藥) 없이 평범한 회유(灰釉)를 시유해도 백자를 만들 수 있는 고령토의 발견은 중국 화학 기술의 개가였다. 그러나 오로지 중국에만 있는 그 흙 때문에, 그 흙으로만 빚을 수 있는 백자 때문에 중국인들은 오랜 세월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고려와 일본 규슈에서 고령토가 발견된 건 나중의 일이다)
※ 표지 사진 출처: 구글 지도 - 고령토가 제일 먼저 출토된 고령진의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