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 때문에 퇴사했다. 조금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 구직활동을 하는 중이었다. 어느 파견회사를 통해 면접을 봤지만 온라인으로 이루어져 회사 분위기를 체크하지 못했다. 그게 실수였다.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알만한 대기업이어서 당시에는 무조건 입사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면접은 긴장되었지만 차분히 내 생각을 말하려 노력했고 2시간 만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출근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신이 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새 직장은 내게 설렘을 주는 곳이었다..
모든 최악은 항상 생각지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새 직장에 출근해서 내내 들은 말은 ' 너는 그 회사를 다녔으니까 더 잘 할 거야.' 였다. 전임자의 대한 평이 매우 좋았었고 내가 뽑힌 이유가 하필 전임자와 비슷하게 보험회사 출신이여서 라는 것을 입사 후에 듣게되었다. 마치 전임자처럼 나도 똑같이 잘 할 거라 믿는 듯한 모습들이였다. 사수와 같은 팀원들은 계속 칭찬을 건냈다. 그 칭찬들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부담감이 올라오고 있었다. 왠지 기대에 부응해야 할 거 같고, 못하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칸막이가 없는 오픈 좌석이어서 안정감을 찾기 어려웠다. 나의 불안이 생겼던 것은 그때부터였다.
출근 4일차, 신기한 증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싶었다. 심장박동이 심각하게 뛰고 식은땀이 나길 시작하고 나도 모르게 눈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게 뭘까 고민을 했다. 불치병에 걸려서 몸이 아픈 건가? 싶었다. 이 증상들을 나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점차 다른 사람들도 내 증상들을 눈치채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사람들이 내 증상을 알고 이상하게 본 사건이 있었다. 그날도 나는 신체적으로 나오는 이 증상들을 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내 몸은 그런 내 노력들을 무시한 채 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고 나는 불안한 나머지 주변을 심하게 두리번거렸다. 하필 이 회사는 매일 좌석을 바꿔야 하는 자율좌석제를 시행하는 회사여서 난 매일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날 옆에 앉은 부장님은 내 증상을 느꼈는지 나중에는 부담스럽게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눈치를 안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고 졸지에 사람을 빤히보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
곧바로 다음날 상사와의 면담을 하게 되었고 나는 오픈 좌석에 대한 적응 때문에 눈치를 보게 된다고 말씀드렸다. 다행히도 상사분은 날 이해한다는 듯 대화가 잘 마무리되었고 나도 이 증상을 개선하고자 주말이 되자마자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내 증상들을 설명드렸다. 설명을 하면서 서러움이 터진 나는 오열하듯이 울음을 참지 못했고, 그 모습을 본 의사 선생님은 불안 증세가 심각한 거 같으니 일단 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일주일 치를 처방받고 약을 먹고 다녀보니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주변을 덜 의식하게 되었지만 부작용으로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잦은 실수가 나타나니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답답하지만 내가 큰소리를 무서워한다는 사실 때문에 쉽게 불만을 토해내질 않았고 잠시 약 덕분에 나아진 내 증상은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증상이 돌아오고 눈치를 볼 때마다 사람들은 '쟤 또 저러네.'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날 위축시켰다. 다른 부장님은 내가 눈치를 볼 때마다 마치 들으라는 듯이 '쟤는 저게 병이야'라면서 말하곤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서러워지기도 했지만 나는 적응하려고 하루에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집에 도착하고 나면 한숨을 쉬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결국 한 달째가 될 무렵에 파견회사는 계약만료로 인한 퇴사를 제안했고 나는 그걸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만료로 인해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하는 순간에도 파견회사는 나를 탓하며 계약서에 빨리 서명을 하라는 듯이 나를 겁박했다. 나의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는지 아냐면서 따지듯 묻는 그 순간이 정말 상 쳐였다. 역으로 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아냐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서명을 했고 하루빨리 그 회사에서 벗어나고 싶어 짐 정리가 되자마자 인사를 생략하고 울음을 참고 조용히 회사문을 나갔다. 이렇게 나는 퇴사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