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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지 Jan 08. 2024

혈연이라는 관계

그동안 안 쓰고 싶었지만 결국 쓰게 되는 주제인 혈연.

나의 가족 중 외가는 소위말해 콩가루집안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멀쩡히 가정을 이루고 산 사람들이 별로 없다. 이모들도 재혼을 한 이모들도 있고 동성동본으로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지낸 이모도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엄마는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컸을 거 같다. 하지만 그 노력과 별개로 엄마는 나와 오빠에게 학대라는 큰 상처를 남겼고 아빠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줬다. 아버지는 10여 년 간의 전쟁 같은 결혼생활 얘기를 꺼낼 때마다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신다. 나에게 엄마란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화부터 내는 사람이다. 물건 던지는 건 기본이고 자기 마음대로 상대가 안 움직이면 나중에라도 꼭 때려서라도 자신의 화를 푼다. 그러고 나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구는 모습이 너무나 기괴했다.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엄마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하곤 했다. 그 바람은 초등학교 6학년 새 학기가 시작할 무렵, 갑작스레 이루어졌다. 엄마의 사인은 암의 재발로 인한 사망이지만, 나는 그걸 화병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결국 몸까지 화를 불러일으켜 생긴 병이라고 믿는다.


나는 엄마와의 추억을 생각하면 혼난 기억이 많다. 그럴 때마다 이런 추억만 남기고 간 엄마가 원망스럽다. 그리고 이런 엄마를 잘못 키운 얼굴도 못 본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원망했고, 엄마를 방치한 이모들과 외삼촌들을 경멸했다. 이 혈연이라는 주제를 쓴 이유도 최근에 겪은 사건 때문에 고르게 됐다.


 큰 이모가 작년 10월에 돌아가셨다. 유감스럽게도 고독사셨고 이모는 동성동본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혈연적으로는 자식이 있지만 서류상으로는 무연고여서 무연고 사망 처리가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사망 소식을 들은 건 작년 11월 말쯤이었다. 이 사건이 나에게 상처로 다가왔다.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큰 이모 앞으로 있던 LH임대주택의 보증금 때문이었다. 이걸 상속자들끼리 대표자를 뽑아서 보증금을 대리 수령해 나눠 가져야 한다. 문제는 이때 유일하게 살아계신 막내 이모가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모는 우리 가족에게 본인을 대표자로 해서 보증금을 수령하는 걸 동의하라 했고, 나는 당당하게 우리 몫의 지분을 요구했다. 이때만 해도 보증금이 한 천만 원 남았겠지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보증금 150만 원을 여섯 명이서 나눠 가져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 때는 이미 늦었다. 


 막내이모는 지분을 나눠 달란 내 문자에 성질이 났는지 전화로 "네가 그걸 받을 자격이나 있어?"라며 발악을 시작했다. 그렇게 따지자면 본인은 엄마가 돌아간 뒤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나. 연락 한 통을 했나? 음식이라도 보내서 배를 불렸나? 나는 침착하게 내 할 말을 이어갔지만 돌아오는 말은 '어디서 이모한테 말대답이야? 너희 아빠가 그리 가르치던?'이란 원색적인 비난이었다. 이후 결정적인 말 한마디가 내 눈물 버튼을 건드렸다.'너희 아빠는 내 동생 잡아먹은 놈이야!'


 아무리 그래도 할 말 못 할 말을 구분할 줄 알아야지! 이게 조카에게 할 말인가? 우리 아빠는 우리를 케어하는 대신 엄마를 직접 간병하신 분이다. 뇌로 전이된 암 때문에 비몽사몽 하는 엄마의 행동들을 다 받아준 아빠한테 몹쓸 말을 하다니.. 정말 화내는 거 조차도 자매가 똑 닮았다. 자기 맘대로 안 되니까 욕부터 박는 게 너무 닮아서 소름이 끼쳤다. 


 통화가 끝나고 아빠에게 이 말들을 전달했다. 도저히 대표자 동의를 해줄 수 없어 통화내용을 다 말해줬다. 어쩜 자매가 이런 성격까지 똑 닮았을까 하는 이야기도 했다. 그 뒤로 우리 가족은 영원히 동의서에 서명을 하지 않은 채 지내고 있다. 문제는 그 후 아빠에게 아내 잡아먹은 놈이란 말이 상처로 다가와서 아빠를 괴롭게 했다. 그런 아빠를 위로하느라 고생했지만 우린 이번 일을 계기로 이모와 인연을 끊고자 결심했다.


 사람이란 게 혈연만으로는 친해질 수 없나 보다. 이렇게 서로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쉽지만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본인의 기분만 중요시 여겨 아픈 동생을 챙기지도 않은 사람이 할 수 없을 거 같은 모욕을 하다니.. 저런 어른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나는 외가와의 인연을 끊었다. 이렇게 요란하게 끊어서 유감스럽지만 내 가족을 모욕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낼 수는 없다. 


새해는 새 마음으로 나를 챙기과 나의 가족들을 챙기며 지낼 것이다. 여러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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