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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지 Apr 01. 2024

카레 한 국자의 추억

 어릴 때 여름이 오면 자동적으로 카레 먹는 시즌이 왔었다. 엄마와 손잡고 카레를 만들기 위해 장 보러 골목시장에 갔던 추억은 카레냄새를 맡으면 자연스레 생각이 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3년간 여름이 되면 무조건 카레를 만들어 달라고 아빠에게 졸랐다. 카레를 좋아한다기보다 엄마가 만든 카레에 익숙해져서 그 맛을 다시 먹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당연하게도 아빠가 만든 카레에서는 엄마의 맛이 나질 않았다. 그게 아쉬우면서도 아빠의 정성을 무시할 수 없어서 한 그릇은 무조건 싹싹 비웠다. 


 초여름 무렵이었을까 그때의 엄마는 항상 저녁메뉴로 카레를 골랐다. 왜 카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채소랑 고기가 고루 갖춰져 있으니 나와 오빠가 잘 먹고 건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카레가루 코너를 가면 꼭 백세카레 순한 맛을 골랐다. 왜 굳이 백세카레를 골랐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백세카레처럼 우리가 오래오래 건강하라고 고르신 거 같기도 하다. 워낙 잔병치레가 많았던 나와 오빠는 어릴 때 한약을 달고 살았다. 원해서 한약을 먹었다기보다는 엄마의 강압적인 권유로 강제로 먹었었다. 그것 덕분에 홍삼진액이라든지 쓴 건 웬만해선 잘 먹는다. 문제는 편식이 심했던 우리 남매에게 식사시간이란 정말 고역이었다. 


 엄마는 우리 어릴 때 어땠는지 물어보면 항상 밥을 안 먹었다며 불만을 토로했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싫은걸 억지로 먹는 게 얼마나 힘든지 말하고 싶었지만 우리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았기에 반박하지 못했다. 아마 카레를 만들어준 것도 되도록이면 맛있으면서 영양소가 가득한 걸 찾아본 엄마의 노력이겠지. 그때 나는 엄마의 카레가 가장 맛있었다. 신기하게 쓰지도 않고 냄새나는 당근이 더 맛있어지고 양파가 자꾸 먹고 싶어지는 카레가 나는 신기했다. 그래서 카레시즌이 되면 너무 신나서 요리하는 엄마 곁에 계속 알짱거렸다. 


 양파를 써는 엄마, 카레가루를 물에 녹이는 엄마, 당근을 썰며 나에게 한 조각 먹으라고 권유하는 엄마의 모습들이 생각난다. 이렇게 옆에서 봤으면 카레 만들기의 달인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카레를 만들지는 못한다. 일인가구인 나에게 카레란 시간과 너무 많은 재료들이 들어가는 도전하기 힘든 요리가 됐다. 그나마 카레의 맛을 느끼려면 반찬가게를 가거나 카레전문점에 방문하는 정도로 달래고 있다. 여기서도 엄마의 카레가 느껴지지 않아 매우 아쉽다. 


못 먹은 지 15년지 지난 지금도 카레에 대한 추억을 생각하면 엄마의 카레가 먼저 떠오른다. 영원히 먹을 수 없는 카레가 되어버린 추억의 카레는 아직도 내 기억을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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