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혐오를 버리며
최근 다시 수면제를 먹고 있다. 심지어 주치의랑 상의도 없이 간헐적으로 동네 내과, 가정의학과에서 처방 받아서.
참 잘하는 짓이다, 나도 안다.
사실 주치의를 보지 않은지 반 년이 넘었다. 그쯤부터 주치의와 상의하여 약을 모두 끊었다. 건강 문제(신체질환이다)로 일을 쉬게 되면서, 직장 근처 였던 주치의 병원이 집에서 멀었던 탓에 집 근처로 병원을 옮겼다. 약을 먹지 않으니 2주에 한 번 정도 무드를 체크하고자 짧은 상담을 하기 위함이었다.
불행히도 새 의사는 나와 맞지 않았다. (불필요한 검사 유도, 짧고 사무적인 상담 등) 딱 두 번 방문하고 자의로 가지 않았다. 어차피 약을 먹지 않으니까.
몸은 좋아졌고 복직했지만, 주치의 병원이 너무 잘 돼서 예약이 힘들어졌다. 1달을 기다리란 말에 힘이 빠져서 다음에 갈게요- 한 뒤 잊어버렸다. 뭐, 어차피 약을 먹지 않으니까.
기분은 계속 괜찮았다. 자살사고도 없었다.
하지만 약 1달 전부터 들쭉날쭉하게 불면의 밤이 찾아왔다. 최근 2주 정도 회식 같은 술자리가 잦아지면서 술을 많이 마셨다. 며칠 전 남편과 크게 다투고 불현듯 자살 사고가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머릿속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위험하다!!!
근데 우울하진 않다. (일반인들은 이해 못하겠지, 우울하지 않은데 왜 자살을 하고 싶은지.) 생활에 큰 영향도 없다. 난 고기능 2형 양극성 장애니까. 하지만 다시 찾아온 불면, 자살사고는 분명히 위험한 신호다. 급하게 집 근처 다른 병원을 찾아 상담을 예약했다. 이번엔 나랑 잘 맞는 의사면 좋겠다.
술기운에 “또 왜 이러는 거야? 쪽팔리게! 진짜 지겹다!”라며 악을 쓰고 울었지만 이내 진정했다. 그래도 많이 컸다, 경조울. 초기에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바로 병원에 가다니. 마음도 힘든데 자기 혐오까지 끼얹지 말자. 추스리는 것도 인정이라는 용기와 추진력이 필요한 법이니까, 그저 나 자신을 기특해하자.
정신 질환은 끝은 없다. 잠 못자고 자살 사고에 시달려도 티모시 샬라메의 신작 <듄>은 재밌고, 남편과 만들어 먹은 파스타도 맛있었다. 정신 질환을 안고서 소소한 일상을 즐긴다. 생활의 일부처럼. 나만 아무 것도 아니면 결국 아무 것도 아니다. 그저 관리하면서, 악화와 호전의 파도를 타고 일상을 오르락내리락 할 뿐.
그래서 어쨌거나, 하고 싶은 말은, 요즘 또 잠을 잘 못 잔다, 근데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