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운동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조급한 사람이다. 운동을 좋아하는데 조급한 사람은 빠른 시일 내에 얼른 성과를 내고 싶어한다. 그래서 내가 다쳤다.
내가 최초로 가장 오래한 운동은 등산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등산이 좋았다. 자연을 바라보는 게 좋고 자연 속에 있는 게 좋고,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 좋았다. 처음엔 그냥 욕심 없이 여기저기 다녔다. 시간이나 거리에 연연하지 않고 가고 싶은 산엘 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욕심이 생겼다. 그 모든 것은 남들과의 비교에서 파생된 내 것이 아닌 욕망이었다.
진짜 등산을 한다면 여기를 가봐야지, 이러이러한 종주는 꼭 해야지, 산을 좀 탄다고 하면 이런 산엔 꼭 가 봐야지. 그런 이야기들에 귀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체력을 좀 더 키우고 심폐지구력과 근력을 키워서 몇 키로를 몇 시간 안에 주파하겠어. 주 몇 회를 가겠어. 뭐 그런 욕심들이 생겼다. 내것이 아닌 욕망과, 직장에서 느낄 수 없었던 성취감이 주는 도파민 같은 것들이 짬뽕돼서 단기간 안에 체력을 확 끌어올렸다.
그래서 30km가 넘는 종주도 하고 남들 8시간 걸려서 다녀온다는 코스도 4~5시간 안에 주파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확인하며 뿌듯해 했다. 심폐지구력을 키운다고 러닝도 매일 했다. 러닝도 하다보니까 페이스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어떻게든 5분대에 주파하기 위해서 무리를 했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아니, 무릎이 터졌다.
사실 통증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는데 무시하고 계속 산에 다니고 달리기를 하다가 사달이 난 거였다. 슬슬 아프던 게 갑자기 미친듯 아프더니 그냥 걷는것조차 힘들어졌고 그래서 병원에 갔다. 슬개건염이라고, 무리해서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발생하는 염증이라고 했다. 회복에 걸리는 시간도 사람마다 달랐다. 하여튼 당분간 무리해서 몸을 쓰면 안된다고 했다. 특히 뭐 달리기, 등산, 스쿼트 같은 것들은 하지 말라고 의사선생님은 당부했다.
좋아하는 것들을 다 하지 말라니...
우울해서, 그리고 못 움직여서 한동안 누워만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폭식을 했다. 좋아서, 욕심나서 한 것들인데 그것들이 독이 되다니. 그것들을 너무 열심히 해서 못하게 됐다니 진짜 처참했다.
절망의 시간, 후회의 시간들을 보내다보니 곧 깨달음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무릎에게 사죄했다. 그리고 조금만 더 여유를 가져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사실 조급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나는 늘 그놈의 조급함 때문에 모든 일을 망쳤으니까. 진짜 이번에는 제발, 성급하게 굴지 말자고 계속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다독였다.
운동을 좋아하는데 못 움직이는 것은 고역이었으나 무리했다가는 평생 좋아하는 걸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니 그래도 참아졌다.
그러다 어제 슬슬 무릎이 괜찮은 것 같아서 한강으로 나가봤다. 다시 한번 시작해봐도 될 것 같았다. 그동안 충분히 쉬었고 깨달음도 얻었으니까.
욕심내지 말고 딱 2~3km만 뛰자고 맘 먹고 나갔다. 페이스는 체크도 안 하자고 마음 먹었다.(사실 지키진 못했다. 워치에 너무 떡하니 페이스가 떠서. 그래도 거기에 연연하지 않으려 애썼다.) 페이스가 거의 2분 가깝게 느려졌지만 그래도 이렇게 뛰었는데 무릎이 아프지 않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처음이라고 생각하고 뛰자. 처음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처음인 것처럼 하면 되겠지. 그러면 다시 다치기 전으로 아니면 다치기 전보다 더 좋은 페이스를 낼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거기에서 용기를 얻었던 걸까?
공무원 그만 둔 것을 사실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만두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후련하지 않고 어딘가 찜찜했던 것이 아무래도 부모님께 비밀로 한 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숨길 수 있을 때까진 숨겨보자고 생각했는데 왜인지 3km 뛴 것 가지고 가슴이 벅차오르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뭐 하냐고, 근교에 산책을 가자고.
부상을 딛고 일어나 회복하니까 용기가 생겼다.
조바심을 내지 않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7년간 일했지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공무원 생활을 청산했지만,
내가 부상 후에 처음인 것처럼 달리기를 시작했던 것처럼 새롭게 뭐든지 시작한다면
다시 예전의 페이스를, 아니 그보다도 더 좋은 페이스로 달릴 수 있겠지, 왠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