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계
달리기의 네 구간
8분 33초, 3번째 구간 평균속도다. 사과 손목시계에서 1킬로미터마다 평균 속도를 알려주는데 오늘 4킬로미터 달리기에서 각각 8분 55초, 8분 30초, 8분 33초, 9분을 기록했다. 소설이 발단, 전개, 절정, 결말로 구성되는 반면 달리기 과정은 약간 다른 면이 있다. 첫 구간은 워밍업으로 가볍게 뛰다가 두 번째 구간에서는 약간 속도를 내본다. 세 번째 구간에서는 속도를 더해 달리기의 절정을 이루다가 마무리 구간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경기이기에 최선을 다해 기량을 펼친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결말 구간은 첫 구간보다 더 늘어져버렸다. 오늘은 아쉽게도 달리기의 정석을 따르지 못했다. 다음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쉽다.
달리기의 절정
몇 살까지 살 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지금이 인생의 절정 시기라고 생각했다. 50살이면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 나이라고 하며 퇴직 준비하고 삶을 정리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워킹맘에겐 오히려 그동안 아이들 키우느라 참았던 기량을 발휘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IMF가 대학 졸업을 축하해 준 세대라 취업도 늦게 했고 덩달아 결혼도 늦었다. 남편 뒷바라지 하면서 아이 둘이 기저귀를 떼고 지 앞가림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니 10년이 지나가버렸고 회사에서 존재감은 없어진 지 오래다. 이제 일을 해보려 하니 짐을 싸야 할 나이가 아니냐며 사방에서 눈치를 준다.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일단 체력이 급감하고 기억력도 저하되었지만 참고 견디면서 배우며 깨달은 통찰력이 무기다. 매일 달리기를 통해서 활력을 유지하는 전략밖에 없다. 늘 그랬듯이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은 사회편견도 나이도 아닌 나 자신뿐이다.
벚꽃 엔딩
달리기를 할 때 이어폰을 끼고 뛰는 사람들이 많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많이 착용하지만 자칫 뒤에서 오는 자전거와 부딪힐 수 있어 전문가들은 이어폰 사용을 권하지 않는다. 그보다도 달리는 순간에 미궁에 있던 과제를 풀면서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 사색에 방해가 되는 이어폰은 사용하지 않는다. 마지막 구간을 도는데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했다. 가볍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달리기를 마무리했다. 주변을 한동안 천국처럼 분위기를 자아냈던 벚꽃 잎이 바닥에 가득하다. 벚꽃 엔딩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벚꽃 엔딩처럼 내 인생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