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천의 붉은 물결

by 지음


푸르름이 가득한 여름의 홍제천에 붉은 물결이 흐른다. 무질서하고만 싶은 무리, 가까스로 규칙을 지켜내는 어른 둘이 있는 무리. 초등학교 저학년의 견학인가 보다. 긴 행렬이 꾸물 꾸물 전진하다간, 오리 한 마리에 우와아 두루미 한 마리에 우와아. 빠르지도 않은데 그나마도 멈칫 멈칫이다. 너무 빠르게 거리가 좁혀지는 것 같아 걸음을 늦춘다.


한 반 남짓인 것 같은데 보조 선생님이 함께다. 라떼엔 담임선생님 혼자서 모두를 이끌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5개 반이 모두 같은 곳으로 소풍이나 견학을 갔던 걸까? 담임 아닌 선생님 한, 두 분이 전체를 보조하면서 걸었던 기억이 난다. 5학년 소풍땐, 보이스카웃 담당 선생님께서 보초처럼 1반부터 5반까지를 왔다 갔다 하셨었다. 순간 떠오른 얼굴이 정말 그 선생님의 얼굴인지 가물하다.


보조 선생님이 반마다 있어 반 규모로 다른 곳으로 올 수 있었던 걸까? 인근 학교는 이제 1개 반밖에 없는 건가? 아마 전자일 확률이 높겠지? 괜히 얼마 전 서울 안의 초등학교들이 문 닫는다는 기사가 스친다. 심정적으로 그 편이 다행이니 일단 믿는다. 벌써부터 학교가 소멸되기 시작하는 건, 너무 빠른 고령화의 징조니까.


당연하게도 모두가 입고 있는 빨간 티셔츠는 체육복이 아니었다. 우리 때는, 초등학생이 여벌의 단체복을 맞추는 일은 없었다. 시대가 그랬고, 옷을 한 벌 더 산다는 행위가 모두에게 편안하진 않았던 것도 같다. 소풍 갈 때마다, 운동을 하지도 않는데 체육복을 입어야 해서 싫었던 감정의 파편들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아이들의 무리는 정신없고, 제멋대로다. 이 작은 호모사피엔스에게도 감정체계가 발달해 있어, 그들 스스로의 만족감과 호기심을 향해 행동한다. 주변이나, 남의 편의까지를 고려하기 어려운 나이. 모든 행동을 통제하긴 어렵더라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만큼은 확실히 인지해야 한다.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뭉텅이 들이라면 수이 감지가 가능하다. 단순한 소속감 이상의 기능적 의의가 있다.


걸음을 늦춰도, 순식간이었다. 느려도 너무 느린 행렬. 홍제천변 길은 인도가 좁기에, 나는 혼란의 한가운데를 지나야 한다. 눈으로 보기에도 혼란한 행렬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니 혼돈은 성큼, 이미 내 곁에 서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지속적으로 이름을 부르는 친구는 내 앞으로 뛰어갔다 불려 돌아오고, 다시 뛰어간다. 선생님을 경쟁적으로 부르는 몇몇 아이들과, 오리에 한눈팔려 무리에서 뒤 떨어지려는 꼬마. 서로 재잘대는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엔 맥락조차도 결여된 경우가 많았다. 혼이 빠져나가려던 순간, 좋은 향기가 스쳤다.


베이비파우더, 혹은 존슨즈 로션. 80~90년대 아가전용 로션에서 나던 그 익숙한 향. 나는 이 향이 좋다. 이유 없는 행복한 감정이 밀려 들어온다. 십여 년 전, 나갔던 소개팅에서는 별로 취향이 맞지 않은 상대였음에도, 그가 바른 베이비로션 향이 좋아 선뜻 에프터와 에프터의 에프터까지 만난 기억이 있다. 향 덕분에, 이후의 대화 모두가 즐겁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화장을 한 모습이 미적으로 아름답다 생각될 때도 호감은 로션만 간단히 바른 사람에게 느꼈다.


왜 그 향이 좋을까를 생각하던 순간, 친한 누님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제 모임에서 먹었던 만두 브랜드를 알려주셨다. 너무 맛있다고 너스레를 심하게 떨었나 보다. 생각을 멈추고 답장을 하려던 순간 스치는 기억. 조카의 어릴 적 모습이 담겨있는 앨범의 무리들.


이야기하다가 늦는 줄도 모른 바람에 누님 집 서재에서 자고 다음날에 출발했다. 책장의 가장 아래에는 빼곡하게 매해 매해 커가는 조카의 행복한 일상과 특별한 날들이 기록된 앨범들이 있었다. 한 해에도 몇 개씩 그 수가 각별했다. 모두 펼쳐본 것이 아니기에 일부는 다른 사진첩이었을지 몰라도 ㅎ는 정말 사랑받고 자라는 중이라는 느낌. 일상에 대한, 특별한 날에 대한 관심과 사진 찍기. 그리고 시간 들여 정리한 앨범. 소중하게 생각하는 대상에게만 쏟을 수 있는 사랑과 시간의 산물. 그 순간, ‘아!’ 하고 마음속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첫째다. 그것도 압도적인 첫째. 가장 가까운 동생과도 네 살, 그다음은 여덟 살 차이다. 게다가 할머니가 그렇게 바라고, 사랑해 마지않는 장손.(물론 그것이 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엔 흔한 일이긴 했으니까.;;) 내게도 앨범이 있는데, 놀랍게도 거기엔 엄마의 손 글씨뿐만 아니라 작은 이모의 편지, 작은 외삼촌의 편지. 셋 아버지가 사다 주셨던 인형을 안고 셋 아버지에게 안긴 사진에 말젯 아버지가 써 놓은 편지까지 들어있다.(이건 정말 드문 일로, 말젯 어머니도 받은 편지의 수가 2개밖에 안 됐다고 했던가... 아마도 그랬다.) 몇몇, 사회의 부당할 수 있는 부분까지 겹쳐져 모두의 애정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몇 년을 보냈다. 언젠가 엄마가 웃으며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앵~’ 하고 울기만 해도 3초 안에 온 가족이 달려 나왔었지 않았냐고.


그런 아가의 기억이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꽤 예민한 성정과 성인 ADHD의 증상이 일부 있음에도 티 나지 않고 무던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그건 누군가 나를 위해서 반드시, 빠르게 와준다는 반복된 결과로 인한 믿음이, 기억 이전의 성격을 형성하는 사고회로에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행복한 시절에 자주 몸에 발랐던 베이비 로션의 향기.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은 시절의 행복과 만족이 지금의 나의 마음 어딘가에 깊숙이 박혀있는지도 몰라!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꽤 그럴싸한 가정 같다.


아이들은 좋아해도 아이들의 무리는 힘들어해 왔는데 순간 기운이 난다. 사랑받은 순간은 이토록 중요한 거구나. 구체적인 기억이 되기 이전의 애정이 마음을 지탱해 주는 밑바닥일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한 확신이 든다.

바람결에 흩어지는 아이들의 베이비파우더 향은 집중해서 맡아보니 미세하게 다르다. 어떤 것은 조금 더 산뜻한 향이, 어떤 것은 달콤한 향이 난다. 소풍 가기 위해 맞추는 단체복이 다양해진 것처럼, 당시엔 한 종류였던 베이비로션도 다양해진 탓이겠지?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구나... 제각각의 향에 조금씩 다르지만 똑같이 각별한, 각자 받는 사랑이 듬뿍 담겨 있을 거란 생각에 미소가 난다. 나를 사랑해 준, 저 아이들을 사랑하는 수많은 얼굴들이 함께 미소 짓는다. 좋아하는 향, 좋아하는 기억. 해사한 홍제천의 햇살. 쉴 새 없이 재잘대는 어지러움이 달갑다. 징조 없이 성큼 다가온 빨강색의 위 없는 행복함.



ChatGPT Image 2025년 11월 8일 오후 12_48_59.png


keyword
수, 토 연재
이전 18화별이 진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