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진다네

by 지음

자영업자들이 힘들다는 말이 내겐, 흔한 뉴스의 수식어처럼 들리지 않는다. 가끔은 의도적으로 눈을 가린 듯 못 본 척 지나칠 때가 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추락한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초록 피를 튀기며 몸부림치던 마지막을 본 날. 무심한 척 별일 아닌 듯 지나치고도 결국엔 묻어주러 찾아가듯. 아무리 일상적인 일로 치부하려 해도 때때로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날들. 원하는 방식의 삶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은, 늘 마음 어딘가를 찌른다. 미어지게 만든다. 오래 지나도 짜내면 고름이 나오는 깊은 염증처럼, 그 뿌리가 혈관 깊은 곳에 닿아있다.


네 군데나 다섯 군데 마트의 양배추와 양파 가격을 외우고 다니는 것. 그것은 선택을 잘해둬야 다음 선택을 견딜 수 있는 삶의 생존법이었다. 거칠어지기 시작하면 열대 정글보다 각박한 자본주의 도시 안에서, 떨어질 만큼 떨어진 위치나마 놓치진 않아야겠다는 발버둥. 다른 것들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먹는 것만은 깨끗이, 정화의 의식처럼 남 부럽지 않게. 신선하게 꾸리려는 마음을 지탱하기 위해선 현대 백화점 식품관에 갈만한 돈 혹은 부지런한 발놀림이 필요하다. 어느 작은 호수가 오리 같은 평화를 위해 부지런히 다리를 앞뒤로 휘젓는다.


버는 돈을 늘리지 못하니, 온갖 것을 보태어 살았다. 절기와 계절, 이번 해 강수량 정보를 모아 수확량을 어림 잡는다. 마트의 가격 변동을 따라잡기 위해 녹슬어 버린 미분을 사용했다. 오래 쓰는 바디워시나, 퐁퐁의 세일 주기를 기다리고, 섹터별로 최저 가격으로 파는 마트를 기록해 두었다가 쇼핑 루틴에 반영한다. 싼 가격에 잘 구한 물건을 양손 무겁게 들고 집으로 걸어 돌아가는 길. 언덕을 오르며 땀을 흘려버릴 때 같이 무언가 빠져나가 버리는 감각. 신사임당 한 장도 못 되는 행위들. 그것 또한 남들과 같은, 삶을 견디는 일이라 자위하며 꼭꼭 접는다. 재활용 장바구니와 함께 넣을 때 탁 쳐 주름을 펴고, 웃는다. 평범하게.



지대가 비싼 번화가 근처에 살면서, 한적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죄 된 마음임을. 사랑하는 카페의 폐업 이전에도 가끔 느끼곤 했다. 주제에 취향은 남아 있어서 커피가 맛있거나 쓰기 좋은 분위기를 떠돌곤 하는데, 조용한 노래가 깔린 곳에서 두 시간쯤 글을 쓰고 나면 여전히 드문드문 비어 있는 가게. 내가 남는다고 누가 앉지 못하는 것도 아닌 홀가분함도, 시간이 누적되면 안타까움과 미안함으로 변하고. 나는 창가에 앉은 내 모습이 너무 가게와 어울리지 않아 손님을 내쫓은 것은 아닌지까지 점검해 보는 거다. 100원 230원을, 마트에서 아껴온 돈을 모아 커피 한 잔과 쿠키를 추가하며 정성을 다해 보지만. 미력하다. 페리 윙클과 또또 큐진 그리고... 나는 붙잡지 못한 이름들을 여전히 기억한다.


괜찮은 카페가 생겼다는 소문에, 물어 주소를 찍어 보니 위치는 가 본 곳이었다. 그 위에 빛나는 주황색 별은 가본 곳 중에서도, 내가 아끼는 곳 위에만 찍어두는 표식. 싸하고 밀려왔다. 가게가 없어지고, 그다음 장소가 입소문을 타 귀에 들어올 때까지. 주황별은 조용히 숨어 있었다. 학기를 마치고 오랜만에 찾았다 발 돌려야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원주에 분점을 낸단 말이, 여기를 닫는단 말인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사장님 가게가 이젠 두 개네요 웃었던 기억들.


다음 장소를 등록하기 위하여, "폐업했거나 정보가 없는 장소입니다"라고 쓰인 별을 지워 버릴 수 없었다. 어차피 여러 번 가서, 발이 먼저 찾아갈 수 있는 곳. 미안하지만, 만나지 못한 것을 위해 지난 일을 깨끗이 지워버리는 사람이 못 되니까... 조금, 더. 보다간 그냥 둔다.


이런 순간은 아린다. 마음에 무척 드는데. 이렇게 좋은 곳인데, 이 취향조차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는 것. 혹은 충분히 찾지 않는다는 것은 내 글이 튕겨져 나올 때 보다 깊게 베어 온다. 내가 쓰는 글들이야 불호가 있을 만한 것들. 튕겨 나와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포기라도 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조차 외면당하면 나 같은 인간의 취향은 어디에 설 곳이 있는지. 필사의 각오로 썼던 글이 거절당했을 때의 감정이 5 채널 서라운드 스피커로 사방에서 진동하는 기분. 제곱하여 파고드는 진동. 순간 어지러워 휘청인다.


걷는다. 그저 걷는다. 하염없이. 연남동에서 신촌을 넘어 이대를 갔다 다시 연남동 인근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도, 잊혀지겠지. 신촌으로 흐르던 발길이 자연히 연남으로, 연희동으로 향하였듯. 가게의 1열부터 2열 3열의 이름을 외우고 다녔던 신촌의 골목에서, 실물로 남은 가게를 만나면. 반가움보다도 선명한 오래 잊힌 기억들이 부끄러움의 옆구리를 간질간질 거리는 기분.


그래서 나는 가게 간판이 바뀌고, 최신 업데이트된 지도에 적힌 이름이 다른 것으로 변해버려도 지우지 못한다. 남겨 놓은 별 하나. 언젠가 자동으로 업데이트되어 데이터의 잔해까지 없어져 버리면, 영문도 모를 슬픈 기운이 나를 감싸겠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사랑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알츠하이머 증상처럼. 기억조차 없는 이름을 부르며 눈물 흘릴 테지. 그리곤 또 말하는 거다. 왜 오늘은 갑자기 영문도 없이 눈물이 났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좋은 것. 비교라면 남들과도, 다른 것들 과도할 필요 없이 스스로에 가까운 것을 선택할 당위를 너와 모두에게 주고 싶지만, 알고 있다. 나의 끝. 애타게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나의 모습. 언젠가 너마저도 힘없이 보내는 순간이 올지 몰라. 상상만으로 몸서리 쳐진다. 두세 개의 직업을 감당하느라 지친 몸을 일으킨다. 아직 채 밝지 않은 길로 나선다. 많은 것이 터져나가 버린 초록 거리를 지나서. 잊히지 않아야 할 것 하나를 위해.


그렇게 별이 또 하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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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